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 한국 발레에 미친 영향
초록
본 연구는 한국 발레 시스템의 근간이 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의 단계별 교육법을 알아보고, 한국 발레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한국 발레의 발전방향을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방법에 있어 먼저 바가노바의 ‘클래식 발레의 기본 원리’ 원저를 활용하여 문헌적 고찰을 하였고, 한국에서의 바가노바 교육 현황 및 한국발레의 성장에 관하여 각종 잡지와 신문 기사, 국내 및 해외 문헌 등을 활용하였다. 오늘날 한국 발레는 러시아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그 발판으로 검증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러한 러시아 발레 시스템이 한국발레에 미친 영향은 첫째, 러시아식 발레 교수법과 교육시스템의 도입으로 한국 발레교육의 기초를 정립하였고 둘째, 발레 기능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고안된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신장시켰으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스템의 도입으로 한국에서도 뛰어난 무용수들을 배출하였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발레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전 방향으로는 첫째,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 교과과정의 확충이 필요하며 둘째, 한국적 발레교육을 토착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한국발레 교육시스템을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look into step-by-step teaching of Russian Vaganova ballet system which was the base of Korean ballet system, and its influence over Korean ballet, and to look for the development direction of Korean ballet. For this study, literature research was conducted with the Vaganova’s work ‘Priniciples of Classical Dance’, articles and other researches about the current situation of Korean ballet edu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Korean ballet. Korean ballet education was founded on the introduction of Russian ballet method and education system and Korean students’s learning ability was improved by employing it to develop their ballet function gradually as Russian ballet system did, and finally with the introduction of this system, Korea produced many outstanding ballet dancers. For Korean ballet to make a breakthrough, new curriculum was needed to cultivate professional ballet teachers in a Korean university and it is necessary to define our own Korean ballet system.
Keywords:
Vaganova ballet method, step-by-step teaching, Russian ballet, Korean ballet, ballet education키워드:
바가노바 교수법, 단계별 교육법, 러시아 발레, 한국 발레, 발레교육I. 서론
2020년은 한국과 러시아가 문화·예술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0년 한·러 수교 협정 이후 한국 발레의 현 주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제정러시아의 서구문화 수입정책으로 시작된 러시아 발레는 약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유래한 발레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18세기 초 러시아에 유입되었다. 이후 러시아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오늘날의 고전(classic) 발레 형식을 완성시킨 프티파(М. Петипа, 1818-1901)의 시대와 모던 발레의 기초를 다진 디아길레프(С. Дягилев, 1872-1929), 포킨(М. Фокин, 1880-1942)의 시대를 거치면서 러시아는 마침내 발레의 종주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신혜조, 2018). 이 기간 동안 러시아는 많은 발레 무용수들을 배출했고 발레지도자들은 세계 각국에 러시아 발레를 전파했으며, 이들을 통해 각국의 발레 스타일을 변화시킬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지닌 러시아 발레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1990년 한국에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발레계도 큰 변화를 겪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쇼이 발레단(Bolshoi Ballet)과 마린스키 발레단(Mariinsky Ballet Company)이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외국 발레단이 되었고, 러시아식 발레 교수법과 교육시스템의 도입으로 체계적인 훈련이 가능해졌으며 러시아 발레 지도자들의 내한활동이 지속되면서 국내 발레단의 레퍼토리는 더욱 다양해졌다(이유성, 2009). 마침내 발레 교류를 30년간 지속한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발레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무용평론가 성기숙(2003)은 한국의 발레가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 대학 무용학과의 개설과 전문 발레단의 설립 등 대학과 민간, 두 개의 큰 축을 통해서라고 하였다. 더불어 한국의 발레 인재들이 국제 경연에서 주목받는 요인으로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 덕이라 하였다(성기숙, 2009; 한정호, 2020).
현재 국내 대부분의 발레전문교육기관은 1990년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바가노바 발레 교수법(Vaganova Ballet Method)을 따른다. 현재 이 교수법은 많은 예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적용하여 실시되고 있다(노연경, 2012; 박영현, 2017; 정유진, 2003; 송영희, 2011). 세계 각국의 여러 발레 교수법 중 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교수법’을 채택한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러시아 발레는 2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루돌프 누레예프(Р. Нуреев, 1938-1993),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М. Бары́шников, 1947~), 스베틀라나 자하로바(С. Захарова, 1979~) 등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이 이 교수법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단계적이고 과학적이며, 음악성과 풍부한 표현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이다(문의숙, 2009). 마지막으로 러시아 발레는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학교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가노바 발레학교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정민정, 2010), 완벽한 기교로 전 세계인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아온 볼쇼이 발레학교 역시 바가노바 교수법에 의해 단계적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황규자, 1991). 이처럼 한국에서 상용되는 바가노바 교수법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북미 등의 발레교육에도 하나의 커다란 지침서가 되고 있다(김정민, 2007; 전정아, 2007; 조민희, 2014; 임인택, 2004; Verena, 2020).
러시아와의 발레 교류를 약 30년 동안 지속한 오늘날 한국은 발레교육의 형식에 있어 큰 양적 발전을 이루었다. 본 연구자는 이 시점에서 장기적인 발레교육의 질적 발전을 위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기반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발레교육 분야에서 바가노바 발레에 관련한 다양한 접근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김미정(2002), 문의숙(2009), 정유진(2003)은 문헌 연구를 통해 러시아 바가노바 교수법은 발레교육을 위한 과학적이고 정형화된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김애정(2003), 김하나(2005)는 바가노바 교수법이 한국 발레교육 상황에 적합하다고 하였으며 아울러 발레지도자들의 정확한 교수법 습득에 대해 강조하였다. 나아가 노연경(2012), 전정아(2007), 조민희(2014)는 실제 발레교육 현장에서 지도자들의 교육적 지식 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교육학적 해석에 멈춰있으며, 바가노바 발레가 한국에 어떻게 도입되었고 활용되고 있는지, 커리큘럼의 특성은 어떠한지에 대해 명확하지 못한 실정이다. 또한 앞으로의 한국 발레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 한국 발레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체적인 발레 교육 시스템 개발이 이루어져야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문화예술 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유지숙, 2008). 따라서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해 한국에서의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발레 시스템의 근간이 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의 단계별 교육법을 알아보고, 한국 발레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앞으로 한국발레의 발전 방향을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방법에 있어 먼저 바가노바의 ‘클래식 발레의 기본 원리(Principles of Classical Dance, 1934)’ 원저를 활용하여 문헌적 고찰을 하였고, 한국에서의 바가노바 교육 현황에 대해서는 발레전문교육기관의 홈페이지 커리큘럼 자료를 이용하였으며, 한국발레의 성장에 관하여 각종 신문 기사와 인터뷰 자료, 무용평론가의 문헌 및 해외 발레단 홈페이지 등 역사적 사실과 문헌에 근거하여 살펴보았다.
Ⅱ. 바가노바 교육기관의 변천과정과 한국에서의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
1. 바가노바 교육 시스템의 변천과정
바가노바 교수법은 러시아의 발레 무용수, 안무가 및 교사인 ‘아그리피나 바가노바(Агриппина Яковлевна Ваганова, 1879-1951)’가 고안한 발레 기법과 훈련방법을 말한다. 여기에는 발레 무용수의 테크닉과 신체 표현 능력뿐만 아니라 부상 없이 춤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개발할 수 있는 특별한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을 알아보기 전에 바가노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바가노바는 1889년부터 1897년까지 러시아 황실무용학교(Imperial Theatrical School)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교사 엔리코 체케티(Enrico Cecchetti, 1850-1928)에게 사사 받았으며 졸업과 동시에 마린스키 극장에 입단했다. 바가노바는 발레 무용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지만, 이후 1921년 발레 교사로 전향한다. 20세기 초 당시 러시아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학파 교사에 의해 발레 훈련을 받고 있었고 러시아 발레는 교육적인 면에서 아직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바가노바는 비합리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당시의 발레교육을 비판하였고 새로운 발레교육, 즉 발레 교수법의 필요성을 재고하였다. 때문에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교수법을 독자적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러시아적 발레기법과 이를 가르치기 위한 훈련방법 등을 연구하였다. 더 나아가 바가노바는 “춤 추는 몸의 역학”과 “인체 생리학”을 기초에 두고 발레교육의 체계화와 개선, 미적 표현력 등을 개발하였다(Pawlick & Catherine, 2011). 마침내 1934년 오늘날 발레수업에서 표준으로 간주되는 ‘클래식 발레의 기본 원리(Principles of Classical Dance, 1934)’가 완성되었다(이지향, 2012).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러시아 볼쇼이 발레, 마린스키 발레 등 세계적인 발레단이 출현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러시아 발레의 독특한 에너지와 테크닉은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전통이 깊은 발레학교가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Академия Русского Балета им. А.Я.Вагановой)’라는 것에도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1738년 안나 여제(А́нна Иоа́нновна, 1693-1740)가 프랑스의 무용가 장 밥티스트 랑데(Jean Baptist Landé, 1697-1748)를 초청해 만든 러시아 최초의 황실무용학교에서 출발하였다(이유성, 2009). 이 학교는 20세기 초반 이후 바가노바가 개발한 ‘클래식 발레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한 커리큘럼이 진행된 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그 후 1957년 헌정의 의미로 바가노바 발레학교라고 이름을 바꾸었다(문호, 2004). 8년제인 이 학교는 만 10살부터 입학할 수 있고 현재 약 300명이 전액 국비로 다니고 있으며 학생 2명당 1명 정도의 교사 150명이 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바가노바 발레학교, 2021). 전 바가노바 발레학교 교장인 알타나이 아실무라토바(А. Асылмұратова)는 “문화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연기 등 무용수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며 “러시아 발레가 강력한 테크닉과 더불어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고 평가받는 것도 이런 교육의 힘이 크다”고 언급했다(정상영, 2010). 이처럼 바가노바는 모교에서 러시아 발레 역사상 전에 보지 못했던 훌륭한 무용수인 마리아 세묘노바( М. Семёнова, 1908-2010), 갈리나 울라노바( Г. Ула́́нова, 1910-1998) 등 세계적인 발레 스타들을 길러냈다.
2. 한국에서의 바가노바 교육 현황
러시아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발레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의 발레학교 설립 필요성에 대한 연구는 신수정(1993), 김대희(1999), 박은정(2002) 등에 의해 일찍이 시작되었고 이후 2011년 ‘국립발레학교 설립 추진위원회’까지 구성되었다(박은실, 2011). 하지만 지금까지도 국립발레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 않고 발레교육은 전문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홍애령, 2013). 우리나라의 발레전문교육기관은 국가적 차원의 예술영재 육성을 위한 국립 한국예술영재교육원과 직업발레단 부설 아카데미, 사설교육기관 등이 있으며 중등교육과정으로는 예술 중·고등학교 등이 있다.
먼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부속기관인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은 1996년 설립되어 예술 영재의 조기 발굴 및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비롯하여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는 모두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한 교수, 강사 및 러시아 초빙강사 등에 의해 발레교육이 진행되고 있다(유난희, 2019). 또한 발레의 조기 교육과 단계별 학습을 통해 훌륭한 무용수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직업발레단 부설 아카데미로는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와 ‘유니버설발레단 부설 아카데미’가 있다.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는 국내 최초 발레단 산하 아카데미로 1993년 개설되었으며 러시아 명문 발레학교인 볼쇼이 발레학교, 바가노바 발레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한층 더 전문적인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국립발레단, 2021). 또한 오랫동안 러시아 모스크바 기치스(GITIS) 출신 지도자들에 의해 발레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김순정, 2010). 1994년에 설립된 유니버설발레단 부설 아카데미 역시 정통 바가노바 교육방식을 토대로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한 지도자에 의해 단계별, 수준별 교육법으로 운영되고 있다(유니버설발레단, 2021).
다음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과정 발레전문교육기관으로는 예술중학교 5개교, 예술고등학교 16개교가 있다(이유성, 2009). 그중 전통이 오래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연계가 잘 되어 있는 세 학교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1967년에 학교법인 이화학원에서 시작된 예원학교와 1957년에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고등학교인 서울예술고등학교가 있고, 1974년 한국문화재단의 설립인가를 받은 리틀엔젤스예술학교(현 선화예술중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가 있다. 또한 2010년에 개교한 계원예술중학교와 1980년에 개교한 계원예술고등학교가 있다. 예원학교, 선화예술중학교, 계원예술중학교는 모두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을 채택하여 발레의 정확한 기초 및 이론 습득에 주력하고 있다(송영희, 2011). 특히 예원학교에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초빙한 교사가 상주해 있으며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와의 공식적인 결연을 통해 2002년부터 학생들에게 매년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예원학교, 2021). 또한 선화예술중학교 역시 바가노바 출신 교사들의 장기체류를 통해 정통 발레수업이 진행되고 있으며(김순정, 2010), 1989년에 설립된 미국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Kirov Ballet Academy, 구 유니버설 발레 아카데미)로의 유학 및 연수를 통해 발레교육의 폭을 넓히고 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계원예술고등학교의 발레전공 실기교육 역시 모두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을 채택하여 대학 입시체제의 특성에 맞는 발레 기능 및 지식 습득에 주력하고 있다(노연경, 2012).
결과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비롯하여 직업발레단 부설 아카데미, 중등교육과정발레전문교육기관 대다수가 ‘바가노바 교수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홍수민(2010)의 연구에서 언급했듯 바가노바 발레 교수법이 해외의 여러 교수법 중에 가장 한국 학생들의 정서, 체형, 교수 스타일, 동작 연결 등에 적합하고, 교육이 단계별로 잘 나누어져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였다. 결국 한국의 대표적인 발레전문교육기관 대다수가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설교육기관에서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을 사용하여 교육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유난희, 2019; 홍이빈, 2013).
3.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기관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바가노바 시스템의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약 8년간의 교육을 거친 무용수들은 졸업을 하고 전문 무용수로서 활동을 한 뒤, 약 4년간의 지도자 과정 훈련과 일련의 시험을 거친 후 “발레 교육자”로서 다른 무용수들을 지도할 수 있다.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에는 발레 교수법, 교육학, 심리학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발레 교수법 과정은 러시아에서 대학원 석사학위로 인정되며 구두로 혹은 특정 동작의 시연을 통해 전수되고 있다(Pawlick & Catherine, 2011).
우리나라에서는 현 한국종합예술학교의 김선희 교수가 1993년 최초로 러시아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하였다(한국종합예술학교, 2021). 그는 일찍이 전문적 능력과 자질을 갖춘 무용수를 길러내는 주된 방법으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교육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김선희, 1989). 김선희는 러시아 바가노바 시스템을 국내 예술 중·고등학교에 처음 소개하고 러시아에서 직접 강사를 초빙해 발레 유망주에게 러시아 발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한국발레의 기본 테크닉 향상을 이끌었다.
이러한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은 러시아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은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한국 분원’과 ‘유니버설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에서 진행되고 있다. 먼저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한국 분원은 2002년 청구상업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이었던 비(非)무용계 인사 서정숙에 의해 처음 설립되었다. 한국 분원은 조기 예술교육 차원으로 유치부,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방과 후 아카데미 과정과 재교육 프로그램인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이 병행되고 있다. 이곳에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 파견 교사 1명이 상주해 있으며, 바가노바 발레학교 창립 후 약 280년 전통을 이어오는 발레 교수법이 한국에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김화영, 2001). 교육내용으로는 발레용어, 시범, 동작 설명 방법 등을 포함하여 각 학년마다 가르쳐야 할 동작 구성과 지도법이 포함된다(홍애령, 2013). 또한 유니버설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에서도 단기 속성으로 줄리아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은 바가노바 발레 메소드에 준하는 발레 교수법과 실제 수업에 활용 가능한 발레 이론, 실기 클래스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러시아 바가노바 출신 유니버설발레단 지도위원 지도자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유니버설 발레단, 2021).
결과적으로 이 두 곳에서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한 지도자들에 의해 한국의 대다수 초·중·고등교육기관 및 사설교육기관의 발레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성기숙(2009)은 한국발레의 급성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1990년 이후부터 전통적 발레 강국인 러시아 바가노바 시스템이 한국에 도입되어, 많은 발레 전문기관인 예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소개됨으로써 체계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우수한 무용수를 배출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전정아(2007)는 이러한 바가노바 시스템에 대해 최근까지도 세계적인 무용수를 배출하는 여러 학교의 지침서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훌륭한 무용수를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기관은 전문무용수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에 비해 규모와 개수 측면에서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홍애령(2013)은 국내·외 발레교육자 양성과정 분석이라는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는 발레교육자를 위해 특화된 교육내용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전문무용수 이외의 특화된 직업을 위한 교육과정 역시 부족하다고 하였다. 이렇듯 국내 중·고등교육기관의 발레전공 교육과정은 주로 전문무용수로서의 진로 모색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때문에 “발레지도자 양성을 위한 기초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김경연, 김성민, 2020; 김수혜, 2020; 박은실, 2011). 또한 김인숙(2011)은 한국발레의 현황과 과제 연구를 통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무용수로 활동하는 인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졸업생들이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바로 사설교육기관에 투입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들이 한국발레교육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하였다. 물론 전문무용수 양성기관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학생들을 지도하는 지도자는 고도의 학문적 수준과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한국 발레교육의 질적 발전을 위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교과과정 재편성 및 실질적인 지도를 위한 연계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도자 연수 및 표준화된 자격증 제도마련 등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전문성 있는 발레지도자 양성의 확대가 더 필요한 실정이다.
Ⅲ. 학년별 특성을 고려한 교육시스템
‘계단을 넘어서 춤을 가르치는 것’은 발레계의 오래된 속담이다. 이는 발레 무용수가 무대에 서기까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 수년 동안 서고 걷고, 움직이고 연기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들 등이 단계적으로 개발된다는 의미이다. 본 장에서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보존되고 적용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발레 동작은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단계적으로 습득해 나아가야 한다. 처음 자세를 잡는 것에서부터 무대 위의 춤에 이르기 까지, 과학적인 동작의 습득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Vaganova, 1969).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에서 가장 큰 특징은 ‘학년별 특성을 고려한 교육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바가노바는 각 학년별로 학생들의 진도에 맞는 종합적인 동작과 각 과정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기본 커리큘럼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무용수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다양하게 확장시켰고 테크닉 이행에 꾸준한 향상을 이끌었다(김하나, 2005). 뉴욕 엘리슨 발레단의 설립자 겸 예술감독인 에드워드 엘리슨(E. Ellison)은 이러한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에 대해 “발레교육의 접근 방식에 있어 매우 분석적이며 다양한 범위의 움직임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며 “이것은 예리한 신체 인식을 발달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다”라고 하였다(Rachel, 2020). 또한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의 교장인 마리나 레오노바(М. Леонова) 역시 “바가노바 기법은 사실상 모두가 인정하는 발레 훈련의 기초”라고 언급했다(Candice, 2019).
바가노바 교수법의 학년별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초급단계의 시작인 1학년은 몸의 방향, 팔과 발의 기초자세, 머리의 위치 등의 개념교육을 중점을 둔다. 2학년 과정에서는 몸의 방향전환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며 방향전환에 의한 무게중심의 이동교육을 중시한다. 초급단계의 마지막인 3학년은 다양한 변형(variation)동작을 통한 ‘전문성’과 동작의 ‘정확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더 나아가 다리 힘의 ‘저항력’과 상체의 풍부한 ‘표현력’까지 발달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중급단계의 시작인 4학년은 포즈에서 다른 포즈로 옮기는 테크닉 연습과 다양한 도약동작이 실시되며, 무대를 위한 기초 지식을 배운다. 이때 여러 테크닉들의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것과 팔과 상체의 유연성이 자연스럽게 발전되는 학습이 포함된다. 중급단계의 마지막 과정인 5학년은 초보적인 것을 벗어나 여러 방법의 회전동작을 습득하기 시작하며 남학생들은 보다 큰 도약상태에서 회전동작을 배운다. 또한 다양한 결합(combination)동작과 여러 템포를 활용하여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것을 익히며 상급반 승급을 위한 중요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다음으로 고급단계의 시작인 6학년 과정은 지금까지 배운 교과내용을 조금 더 테크닉적으로 연습한다. 화려한 연결구, 상체 표현력(port de bras), 회전동작, 큰 도약동작 등을 활용하여 그 전보다 더욱 발전된 상태의 아다지오(adagio, 클래식 발레의 중심부분으로 천천히 춤을 추는 동작)를 습득한다. 7학년은 전문가 과정으로 동작 자체가 어렵고 매우 복잡한 결합동작을 활용한다. 또한 다양한 변형동작을 통한 큰 도약동작에 바튜(battu, 서로 맞부딪치다)를 포함한 훈련이 실시되며 회전 테크닉의 향상을 통해 각 학생의 개인적 특성과 개성을 발달시킨다. 마지막으로 무대 위에서 춤 출 준비까지 완성시키는 8학년은 각각의 예술적 기량을 강화하여 개인적인 차이를 보여줄 수 있으며, 동작의 보다 심오한 완벽성과 기본 교과과정 및 예술창작요소를 갖추는 과정이다. 또한 신체 동작의 기교와 춤의 완성도를 높이며 고전, 현대, 캐릭터 음악 등 여러 음악에 맞춰 독특한 스타일을 갖추게 한다(Vaganova, 1969).
요컨대 바가노바는 총 8학년 과정을 초급, 중급, 고급의 3단계로 분류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정형화된 교수법을 도입했고 점차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기교, 강하고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바가노바는 무용수의 내면과 표현력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는 춤을 출 때 인간의 몸이 전체적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생각을 일으키고 무드(mood)를 조성해 나가는 것으로 ‘예술성’이라 불리는 표현력에 염두에 두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 표현력 역시 단계별 학습으로 이루어지는데 초, 중급단계의 느리고 단순한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학생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숙해졌을 때 비로소 ‘예술성’이 발휘된다고 하였다. 이는 학습자의 뇌세포를 통해 스텝이나 동작의 패턴을 뇌에 확립시키는 과정으로 어린 발레 전공생들의 예민한 신체 인식 발달에 큰 효과가 있다(Foster, 2017). 결국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에서의 ‘예술성’이란 숙련된 기술자 또는 필수 8년 과정을 거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Seda, 2015).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남성 무용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남성 무용수들은 바가노바에게 직접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들의 강철 같은 수직자세를 비롯해서 몸을 지탱하는 능력, 회전과 도약을 위한 두 팔의 유보된 힘 같은 것은 완벽한 바가노바 발레 스타일이다. 결국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은 ‘특정 단계를 가르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발레 전통을 중추하게 되었다(Pawlick & Catherine, 2011).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전문무용수 양성 교육기관은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에 입각한 단계별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답습하고 있다. 대다수의 초등교육과정에서는 초급 단계인 1-2학년 과정을, 중등교육과정에서는 2-4학년 과정(중학교)과 4-7학년 과정(고등학교)을 활용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홍수민, 2010; 홍이빈, 2013). 바가노바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한 지도자들 역시 바가노바 훈련 시스템에 맞추어 학년별, 단계별 커리큘럼을 세워 스텝의 방향, 무용이 구성되는 움직임, 그 움직임들의 역동적 관계, 처음과 끝 포즈 등을 명확하게 배분하여 지도하고 있다. 이렇듯 러시아식 발레 교수법과 훈련방식은 우리나라에 전수 및 적용되고 있으며 훌륭한 무용수를 길러내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는 이러한 한국발레의 실정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내놓았다. 그는 “한국인이 가진 기질이 유럽과 많이 다르므로 유럽스타일을 흉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것으로 소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강종훈, 2009). 덧붙여 문영미(2006) 역시 예술중학교 무용전공 교육과정 운영실태 및 인식조사 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발레 교육과정에서 한국만의 체계화된 교수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개선점이라고 피력했다. 이처럼 발레교육의 질적 발전에 있어 발레교수법과 교육시스템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단순히 외국의 좋은 교수법들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교수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발레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추세이며, 발레교육의 강국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면의 현실은 여전히 주입식, 강의식 교육시스템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력(思力) 및 창의성 등이 부족하고 얽매인 느낌이다. 현재 유럽 및 러시아 등의 발레교육 선진국들의 맥락에서 우리만의 발레교육의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술, 표현력, 창의력 개발 등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우리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방식으로 ‘발레’라는 예술을 재생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국인의 성향과 체형, 그리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교수법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Ⅳ.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한국 발레
최태지 현 광주시립발레단장은 “체격이 좋아지고 발레교육이 체계화되면서 한국 무용수들 기량이 급성장했다”고 말했다(전지현, 2010).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선희 교수는 “대한민국이 자랑할 게 많지만 발레는 문화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보물이다”라고 하였으며(임병식, 2020), 러시아의 발레무용가 겸 안무가인 나탈리아 마카로바(Н. Мака́́рова) 역시 한국발레의 급성장에 대해 극찬하며 “러시아도 긴장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김승현, 2006). 이처럼 서양 예술인 발레계 정상에 한국 무용수들이 대거 올라서고 있다. 한때 한국 발레하면 현 국립발레단장 강수진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Мариинский театр), 프랑스 파리오페라 발레단(Paris L'Opéra Ballet), 영국 로얄 발레단(The Royal Ballet),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Stuttgart Ballet),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 등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인 수석무용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오랫동안 폐쇄적이었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2011년 19세의 나이로 동양인 남자 무용수 최초로 입단한 뒤 2015년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오른 김기민이 있다. 그는 2016년 한국 남성무용수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수상하여 한국 발레무용수의 이정표를 새롭게 쓰고 있다. 우리말로 ‘춤의 영예’를 뜻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무용계의 아카데미 상이라 불릴 만큼 그 권위가 대단하다. 김기민은 2015년 말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객원무용수로 초청되어 공연한 ‘라 바야데르(La Bayadère)’의 용맹한 전사 ‘솔로르’ 역으로 이 상을 수상했다. ‘라 바야데르’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며 신비롭고 이국적인 인도 황금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원의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전사 솔로르, 무희에게서 전사를 빼앗으려는 공주 감자티, 무희에게 욕망을 품은 최고 승려 브라만까지, ‘라 바야데르’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배신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 작품이다(김재홍, 2020). 특히 ‘라 바야데르’는 김기민의 대표 레퍼토리로 손꼽히는 작품이며(임수정, 2018), 그는 이 작품의 솔로르 역으로 경쟁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장지영, 2016). 더 나아가 요즘 세계 주요발레단에는 거의 모두 한국인 단원이 있을 정도로 한국발레가 성장했지만 김기민은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정숙희, 2019).
다음으로 1669년에 설립된 전 세계에서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Paris L'Opéra Ballet)의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에투왈 etoile)로 활약 중인 박세은이 있다. 그는 입단 9년 만인 2021년 군무(코리페)에서 수석무용수까지 뛰어오른 인재로 2018년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인 중에서는 현 국립발레단장 강수진(1999년), 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김주원(2006년), 발레리노 김기민(2016년)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이다. 박세은은 미국의 뉴욕 시티 발레단(New York City Ballet)을 이끈 러시아 출신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의 안무 보석(Jewels)의 3부작 중 ‘다이아몬드’에서 주역 연기를 훌륭히 해내며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이혜인, 2018). 1967년 뉴욕에서 초연된 추상 발레의 걸작 ‘보석’은 20세기 최고의 발레 안무가인 발란신의 경력 후반에 속하는 작품으로 1부 ‘녹색 에메랄드’, 2부 ‘붉은 루비’, 3부 ‘다이아몬드’라 명명된 총 3막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3막은 서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각 막에서 무용수는 각각의 제목에 해당하는 보석으로 치장한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발란신은 마지막 3부에서 러시아 황실 발레의 순수함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했고 박세은은 발군의 기량과 감성을 증명했다.
이 밖에도 비교적 많은 수의 한국발레 무용수들이 해외 발레단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는 강효정이(슈투트가르트 발레단, 2021), 핀란드 국립발레단에는 하은지가 종신단원으로 활약중이며(핀란드 국립발레단, 2021)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에는 한국인 최초 여성 수석무용수 서희와 동양인 최초 남성 수석무용수 안주원 등이 활동하고 있다(아메리칸 발레시어터, 2021). 앞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발레 강국이라 불리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유명 발레단의 아시아계 수석 발레 무용수가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한국발레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의 발레 교육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 발레의 성장에 대해 무용평론가 심정민은 “한국에서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교수법 등 좋은 커리큘럼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재목도 좋아졌는데 키워내는 방법까지 좋아졌다”고 극찬했다(임수정, 2018). 이에 더하여 무용평론가 장광열은 “단순히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주연급 무용수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무용수들의 자질, 기량, 예술가로서의 재능 등이 검증이 되었다(박수현, 2016)”고 언급했다.
Ⅴ. 논의
본 연구자는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발레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 교과과정의 확충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예술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의 발레전공 교육과정은 주로 전문무용수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발레교육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은 규모와 개수 측면에서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김경영, 김성민, 2020; 김수혜, 2020). 이렇듯 발레지도자 양성과정의 교육을 받지 못한 지도자가 발레교육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다.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과정의 재편성을 통하여 적절한 지도법을 갖춘 지도자 양성이 이루어져야만 발레교육의 질적 수준이 더욱 향상될 것이다. 교육의 효과를 위해 대학 무용학과에 발레교수법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과과목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발레 동작의 용어, 원리, 단계, 목적, 해부학적 지식 등 동작의 근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적 지식 습득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실습을 제도화하여 교육현장에서 실질적인 지도를 위한 연계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도자 연수 및 표준화된 자격증 제도 마련 등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자질과 자격을 갖춘 발레지도자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
둘째, 최근 전 세계 발레 시장에서 한국 무용수들의 활동은 괄목할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발레 교육시스템 대부분은 러시아 바가노바 시스템을 도입하여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적 발레교육을 토착화(土着化)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초기 러시아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발레 교수법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러시아적 발레기법을 개발했듯이 우리도 여러 나라 발레 스타일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여 향후 한국인의 성향과 체형, 그리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한국 발레 교육시스템을 새롭게 정착하여야 한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과제는 콩쿠르나 입시, 공연에 치중해온 발레교육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문, 문화, 예술 등 폭넓은 분야의 융·복합 교육을 통해 단순히 기술만을 내보이는 발레교육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교육을 통해 인재 육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서 우리의 발레를 발전시켜 나가고, 세계 발레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해야할 것이다.
Ⅵ. 결론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국교 수교 이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문화예술 교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의 역사를 축적해왔다. 오늘날 한국발레는 러시아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그 발판으로 검증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 존재한다.
본 연구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은 단계적이고 체계화된 커리큘럼 속에서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단지 전문적인 무용수뿐만 아니라 발레지도자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발레전문교육기관을 통해 러시아 바가노바 시스템을 도입하고 답습하여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문지도자 양성과정 역시 정통 러시아 발레교수법을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 한국발레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첫째, 러시아식 발레 교수법과 교육 시스템의 도입으로 한국 발레교육의 기초를 정립하였고 둘째, 러시아 발레 교육시스템처럼 발레 기능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우리나라 초·중등교육과정에 계열성을 고려하여 적용함으로써, 단계별 목표달성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신장시켰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스템의 도입으로 한국에서도 뛰어난 무용수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은 한국 발레교육의 근간이자 한국 발레 성장의 주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발레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전 방향으로는 첫째,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전문 발레지도자 양성 교과과정의 확충이 필요하며 둘째, 한국적 발레교육을 토착화(土着化)시키는 작업을 통해 한국발레 교육시스템을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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