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5년 『조선일보』 기획기사에 나타난 경성 7개 여학교 학생선수의 체육활동
초록
이 연구는 1925년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새봄을 맛는 녀학교 운동선수의 자랑」 7건에 실명으로 소개된 학생선수 39명을 분석하여 이들의 종목 참여, 경기경력, 다종목 활동, 학업 및 학교생활과 언론의 인물 소개 방식을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자료는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및 ‘인터넷 아카이브’를 통해 원문을 대조하여 수집하였으며, 기사 7건과 학생선수 39명을 분석단위로 설정하였다. 경기경력은 기획기사에 직접 제시된 내용과 추가 신문 보도 또는 대회 관련 자료를 통해 대조 가능한 내용을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구는 7개 학교 모두에서 운영되었으며, 기사에 직접 명시된 사례만으로도 11명의 학생이 두 종목 이상에 참여하는 등 단일종목 전문화 이전의 다종목 활동이 나타났다. 둘째, 『조선일보』는 운동능력과 함께 학업 성취, 웅변, 성악, 음악 등의 역량, 그리고 출신 지역과 가족관계 및 체육교육 기회를 병기하여 학생선수를 개별적으로 소개하였다. 셋째, 일부 기사에서는 운동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체형, 외모, 여성성을 함께 평가하여 여학생 선수의 주체적 활동을 소개하면서도 그들을 젠더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적 관점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 연구에서 다룬 7건의 기사들은 신문사의 취재 및 편집을 거쳐 선별된 자료이므로 당시 경성 여학생 체육활동 전체를 대표하는 기록으로 일반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39 student-athletes who were introduced by name in seven articles from the feature series 『Pride of Student Athletes at Each Girls’ School Welcoming the New Spring』, published in 『Chosun Ilbo』 from April 23 to May 8, 1925. It examines their participation in sports, athletic careers, multi-sport activities, academic and school life, and the ways in which the newspaper introduced them as individual figures. The research materials were collected by cross-checking original texts through the Chosun News Library 100, Naver News Library, and the Internet Archive. The 7 articles and the 39 student-athletes introduced in them were set as units of analysis, and historical source analysis and qualitative content analysis were conducted. Athletic careers were examined by distinguishing between information directly presented in the feature articles and information that could be cross-checked through additional newspaper reports or competition-related materials.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tennis was practiced at all 7 schools, and even among the cases explicitly mentioned in the articles, 11 students participated in two or more sports, indicating multi-sport participation prior to single-sport specialization. Second, 『Chosun Ilbo』 introduced the student-athletes individually by presenting not only their athletic ability but also their academic achievements, oratorical skills, vocal music, musical abilities, regions of origin, family relationships, and opportunities for physical education. Third, while some articles positively evaluated athletic ability, they also assessed body type, appearance, and femininity, thereby revealing a dual perspective that introduced the active agency of girls’ student-athletes while simultaneously viewing them through a gendered lens. However, because the seven articles examined in this study were selected through the newspaper’s reporting and editorial process, there are limitations in generalizing them as representative records of girls’ physical activities in Gyeongseong as a whole at the time.
Keywords:
Gyeongseong girls’ schools, girls’ student-athletes, Japanese colonial period, history of women’s physical education, Chosun Ilbo키워드:
경성 여학교, 여학생 선수, 일제강점기, 여성체육사, 조선일보Ⅰ. 서 론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여성체육에 관한 연구는 여성의 학교교육과 체육 제도화, 여학교 운동부, 개별 종목과 경기대회, 여성 신체 및 언론 재현 등으로 연구영역이 확장되어 왔다. 여성 학교체육과 전문체육의 전개는 『한국여성체육 100년사』를 통해 종합적으로 정리되었으며(허현미, 조미혜, 배경희, 서지영, 이수연, 2014), 예지숙(2020)은 일제강점기 여성체육이 학교의 체조교육에서 운동부 및 교외 경기 활동으로 확대된 과정을 규명하였다. 이보나, 허현미(2016)는 구술생애사를 통해 당시 여학생의 학교체육과 운동부 경험을 제시하였고, 박귀순(2014)은 부산 일신여학교라는 특정 학교의 체육활동을 분석하였다.
여학교 운동부와 종목별 활동에 관한 연구도 다수 확인되었다. 한해정(2020)은 근화여학교에서 덕성여자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운동부의 정구, 탁구, 배구 활동과 대회 참가를 통시적으로 분석하였다. 김미경, 이동준(2025)은 전조선여자정구대회를 중심으로 여성 스포츠가 교내 활동에서 공개 경기로 확장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김미경(2025)은 『학교체조교수요목』의 변화를 통해 일제강점기 여성체육의 제도화와 여성 신체에 부과된 규율 등을 분석하였다. 장유리(2021)는 여성잡지에 나타난 스포츠 수용이 여성의 건강과 해방을 표방하면서도 현모양처를 비롯한 당대의 젠더 규범으로 회수되는 양상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와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선행연구는 권석무, 유재혁(2026)의 1928년 『조선일보』 여학교 운동부 탐방기사 연구이다. 이 연구는 경성 소재 10개 여학교의 지도종목, 지도교사 및 운동부 운영 구조를 분석하였으며, 본 연구의 대상인 이화, 동덕, 배화, 진명, 숙명, 정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경성 소재 여학교 체육활동이나 해당 학교의 운동부를 처음 규명한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독창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다만 1928년 기획기사가 학교별 운동부 구조와 지도종목 및 지도교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1925년 「새봄을 맛는 녀학교 운동선수의 자랑」은 학생선수 39명의 이름, 연령, 학년, 종목, 경기경력, 학업 성취, 다종목 활동, 개인적 배경과 일부 신체 및 외모 평가 등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25년 자료는 학교 단위의 운동부 운영 현황보다 개별 여학생이 어떠한 ‘학생선수’로 취재되고 구성되었는지를 분석하는 데 차별적인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신문 기사는 당시 체육활동을 그대로 옮긴 투명한 기록이 아니라 취재 대상의 선정, 질문, 서술 및 사진 배치 등 편집과정을 거친 기록 매체의 일종이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한 학교와 학생을 당시 경성의 전체 여학교와 여학생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가의 가족관계나 해외 유학 중인 가족을 소개한 사실 역시 그 자체로 『조선일보』의 항일성 또는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입증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보는 신문이 학생선수를 운동능력 외의 개인적 배경과 결합하여 소개한 방식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에서 여학교 체육활동은 기사에서 운동선수로 호명된 당대 재학생이 학교 운동부를 기반으로 정구, 농구, 배구, 육상, 탁구 등의 종목을 훈련하고 교내⋅외 경기 및 대회에 참여한 활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규 교과로서의 체조수업, 일상적 신체활동 및 무예활동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25년 『조선일보』 기획기사 7건에 소개된 학생선수 39명의 체육활동과 학교생활 및 언론의 인물 소개 방식을 분석하여 기존의 학교, 종목, 지도교사 중심 여성체육사 연구에 개인 인물 중심의 역사적 정보를 추가하는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제시하는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문제1, 1925년 『조선일보』 기획기사에 나타난 여학생 선수의 종목 참여, 경기경력 및 다종목 활동은 어떠한 특징을 보이는가?
- 문제2, 기사에서 여학생 선수의 학업, 학교생활 및 체육교육 기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되었는가?
- 문제3, 『조선일보』는 여학생 선수의 운동능력, 신체, 외모 및 여성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소개하였는가?
Ⅱ. 연구 방법
이 연구의 핵심 사료는 <표 1>과 같이 1925년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획기사 7건이다. 7건의 기본 원문은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을 통해 확인하고, 판독이 어려운 문자와 사진 및 지면 정보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와 ‘인터넷 아카이브’ 소장본을 대조하였다. 세 가지 데이터베이스는 서로 다른 사료가 아니라 동일한 신문 원문에 접근하고 판독 오류를 줄이기 위한 열람 경로로 사용하였다. 경기경력은 크게 두 단계로 검토하였다. 첫째, 1925년 기획기사 7건에 직접 제시된 대회 참가, 입상, 교외 경기, 우승 경력 등을 1차 자료로 정리하였다. 둘째, 기사에 제시된 경기경력 가운데 대회명, 종목, 시기, 소속학교, 성명 등이 확인되는 사례는 ‘국립중앙도서관 데이터베이스 검색’,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동일 시기 대회 보도 및 결과 기사와 대조하였다. 대조 기준은 학생의 성명, 소속학교, 종목, 대회명 또는 경기명, 보도 시기의 일치 여부로 설정하였다. 다만 동명이인 가능성이 있거나 소속학교와 종목이 명확히 일치하지 않는 사례는 교차 확인 사례로 처리하지 않았고, 기획기사에 직접 소개된 경기경력으로만 서술하였다.
<표 2>와 같이 분석단위는 기사 7건과 기사에 실명으로 소개된 학생선수 39명으로 구분하였다. 분석 범주는 첫째, 학교, 연령, 학년 등의 기본정보, 둘째, 주 종목과 추가 종목, 셋째, 훈련기간, 출전 및 입상 등 경기경력, 넷째, 학업과 교내활동, 다섯째, 체육교육 및 진로 기회, 여섯째 출신 지역 및 가족관계 등 개인적 배경, 일곱째 운동능력, 성격, 신체, 외모 및 여성성에 관한 평가로 설정하였다. 사진은 인물 확인과 기사 구성 분석에만 활용하고, 연구자가 사진을 보고 외모나 여성성을 판단하지 않았으며, 해당 범주는 기사 본문의 명시적 표현만을 수집 및 제시하였다.
<그림 1>과 같이 이 연구는 기사의 직접 진술과 연구자의 해석을 구분하기 위해 인명, 연령, 종목, 대회 참가처럼 기사에 명시된 정보는 사실 진술, 능력, 외모, 성격에 관한 기자의 평가는 평가 진술, 선행연구와의 비교를 통해 부여한 의미는 연구자 해석 등으로 구분하였다. 1차 분류 후 원문을 다시 대조하여 누락과 중복을 수정하였으며, 불분명한 표현은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Ⅲ. 결 과
1. 여학교 학생선수의 종목 참여와 경기경력
1925년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새봄을 맛는 녀학교 운동선수의 자랑」 7건에서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4명,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2명,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6명,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11명,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7명, 정신여학교 4명,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5명 등 총 39명의 학생선수가 실명으로 소개되었다. 기사에 나타난 학교별 종목을 비교하면 정구는 7개 학교 모두에서 확인되었으며, 농구는 이화, 배화, 진명, 정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등 5개 학교, 육상은 이화, 배화, 정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등 4개 학교, 배구는 진명, 정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등 3개 학교, 탁구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1개 학교에서 확인되었다(조선일보사, 1925.04.23.; 1925.04.25.; 1925.04.27.; 1925.04.29.; 1925.05.05.; 1925.05.06.; 1925.05.08.). 기사에 나타난 학교별 학생선수와 운영종목을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정구가 7개 학교 모두에서 확인된 결과는 1920년대 여성 스포츠의 확산에서 정구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는 기존 연구와 일치한다. 김미경, 이동준(2025)은 1923년 시작된 전조선여자정구대회가 여성체육을 교내 활동에서 전국 규모의 공개 경기로 확대하고, 여성 스포츠의 제도화와 공공화를 촉진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에서 윤문희를 비롯한 학생의 전조선여자정구대회 참가경력이 소개된 사실은 정구대회가 단지 대회 운영 차원의 제도에 머무르지 않고 여학교 학생의 실제 운동경력과 학교의 명예를 구성하는 역할을 맡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정구가 가장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예지숙(2020), 한해정(2020), 김미경, 이동준(2025), 권석무, 유재혁(2026)의 연구에서 상당 부분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번 연구의 차별성은 종목의 보편성을 다시 규명했다는 데 있지 않다. 특히 <표 4>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1925년 기획 기사에서 실명으로 소개된 학생선수 가운데 누가 정구와 다른 종목을 병행했고, 어떠한 경기경력을 보유했는지를 개인 단위에서 확인했다는 점에 있다.
최소 11명의 학생이 두 종목 이상에 참여했다는 결과는 당시 학생선수의 활동이 단일종목 전문화와 다소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체육을 전문 직업으로 삼는 선수 양성체계가 충분히 형성되기 이전의 학교 운동부 운영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한해정(2020)은 일제강점기 여학교 운동부가 정구, 탁구, 배구 등 여러 종목을 운영하면서 이후 여성 전문선수를 배출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 연구의 분석 사례는 이러한 학교 운동부의 초기 단계에서 동일한 학생이 여러 종목의 선수층을 구성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종목 참여를 학교의 특정 교육이념이나 의도된 교육방침의 결과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학교의 교육 방침뿐만 아니라 한정된 학생선수와 지도자, 운동장 및 시설, 대회 수와 종목별 훈련 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학생선수들의 다종목 참여는 전문화 이전 여학교 운동부 운영의 구조적 특징과 학생 개인의 폭넓은 체육 경험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기사에서 직접 확인되는 사실과 더불어 당시 학교체육 제도에 대한 역사적 추론 사이의 균형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연구와 가장 밀접한 권석무, 유재혁(2026)의 연구에서는 1928년『조선일보』 기획 기사에 소개된 10개 여학교의 지도종목과 지도교사 및 운동부 운영 구조를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분석한 1925년 기획기사는 <표 5>에 제시된 내용과 같이 학생의 이름과 경기경력 및 다종목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두 가지 기사 기획의 차이를 곧바로 1925년에서 1928년 사이 여성체육의 사회 및 역사적 변화로 단정할 수는 없다. 차이는 시기적 변화가 아니라 기획기사의 취재 목적과 편집 형식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향후 두 기사에 나타난 보도 형식과 어휘 및 사진 구성까지 면밀하게 비교하여 1920년대 후반 여학교 운동부 보도의 변화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표 5>에 제시된 학생 선수들의 경기경력 가운데 1924년 10월 17일에 경성사범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된 조선신문사 주최 제2회 전선여자육상올림픽대회(全鮮女子陸上オリムピツク大會)의 참가 기록 및 경기 성적이 교차 검증되는 김희숙, 윤문희, 민위득의 사례를 제외하고(조선신문사, 1924.10.16.), 나머지 경기경력은 조선일보사의 기획 기사에서만 확인되는 내용이므로 향후 추가적인 교차 검증 사료 탐색이 요구된다. 정확한 대회 명칭 또는 개최 년도가 불분명한 김두임과 윤문희, 이용렴의 정구대회 및 탁구대회 사례는 제외하더라도 송남순과 박례자가 출전한 육상 경기 기록이 1924년 10월 17일에 경성사범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2회 전선여자육상올림픽대회 결과 보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만큼, 1924년 5월 30일에 개최된 히로히토의 세자 시절 결혼 기념 올림픽대회 또는 1924년 10월 17일에 훈련원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1회 여자올림픽대회 가운데 어떠한 대회에 참가한 것인지 추가적인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경성일보사, 1924.10.18.; 시대일보사, 1924.10.19.). 산구은행(山口銀行) 직원들과 정구 경기에 참가했던 김순용과 윤정희의 사례 또한 별도의 당대 신문 사료에서는 보도 내용이 확인되지 않지만, 산구은행 관련 기록 자료 조사를 통해 추가적인 사실 규명이 향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학업 및 학교생활과 체육교육
1925년 『조선일보』 기획 기사 7건에서 여학교 학생선수는 그들의 운동능력만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표 6>에 제시된 내용과 같이 기획 기사에서는 연령과 학년, 출신 지역, 운동경력, 학업 성취, 교내활동, 예술적 재능 및 가족관계 등을 함께 제시하였다. 학생선수의 연령은 확인 가능한 사례를 기준으로 15세부터 21세까지 분포하였으며, 고등보통과와 전문부 및 대학 예과 등 서로 다른 교육단계의 학생이 포함되었다. 이는 당시 학교별 학제와 과정이 동일하지 않았고, 이들 신문이 여학교 운동선수라는 취재 대상 및 범주에 여러 교육단계의 학생을 함께 포함했음을 보여준다.
기사에서 학업 우수 또는 수석 졸업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학생은 적어도 9명으로 확인된다. 조은경은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 예과에 진학한 학생으로 소개되었다.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채선비와 김은성은 농구와 정구 활동뿐 아니라 학업 성적도 우수한 학생으로 평가되었다.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의 정관숙과 김철자는 배구선수로 활동하면서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으로 소개되었고,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의 이현숙, 서정주, 한유정 또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한 사례로 소개되었다. 정신여학교의 김순복 역시 정구 실력과 학업 성적을 함께 갖춘 학생으로 보도되었다(조선일보사, 1925.04.23.; 1925.04.27.; 1925.04.29.; 1925.05.05.; 1925.05.06.).
운동 이외의 교내활동과 예술적 재능 또한 학생 선수의 인물 묘사에 포함되었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김분옥은 토론회와 웅변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경력이 있었고,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의 김두임은 정구뿐만 아니라 성악에도 소질을 보였다. 정신여학교의 최한라는 운동부 활동과 함께 음악에 재능을 갖춘 것으로 소개되었다(조선일보사, 1925.04.23.; 1925.04.25.; 1925.05.06.). 이와 같은 보도 방식은 당시 기사 지면에서 학생선수의 운동경력과 학업, 교양, 문화적 능력이 함께 제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연구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조선일보』는 여학생 선수를 경기력 중심의 전문선수로만 소개하기보다 학업과 교내생활을 병행하는 학생선수상으로 설정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당시 기자 또는 신문사의 실제 의식을 직접 확인한 결과라기보다, 기사 서술 방식에 근거한 연구자의 해석이다.
특히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보도 기사는 학생선수들이 운동을 시작한 기간과 학업 성취를 함께 소개하면서 운동선수라는 이유로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조선일보사, 1925.05.05.). 이는 운동과 학업이 상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동시에, 여학생의 운동부 활동이 학교교육의 기본 책무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독자에게 확인시키는 서술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기사 표현만으로 실제 학교가 체계적인 학업 및 운동 병행 정책을 운영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해당 내용은 우선 신문이 제시한 학생선수의 모범적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기사에서는 학생들의 체육교육 및 진로 기회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도 나타난다.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송남순은 육상, 정구, 농구에서 활동하였지만 조선에는 체육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이 부족하고 해외 유학 또한 쉽지 않다는 고민을 드러냈다(조선일보사, 1925.04.27.). 이는 당시 여학생 선수에게 운동부 활동 이후의 진학과 전문교육 경로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개인 사례이다. 그러나 한 학생의 진술을 당시 여성체육 제도 전체의 실태로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정, 여성 대상 체육전문교육기관 및 유학 제도에 관한 보조 사료가 추가되어야 한다.
학생의 출신 지역과 가족관계 또한 선택적으로 보도되었다. 김분옥은 평안남도 강서군, 조은경은 원산, 채선비는 평양, 김은성은 북간도, 송남순은 전라남도 영광 출신으로 소개되었다. 조은경의 부친과 민위득의 형제가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 오입분이 강우규의 사이토 마코토 암살미수 의거를 도운 최자남의 조카딸이라는 사실도 기사에 포함되었다(조선일보사, 1925.04.23.; 1925.04.27.; 1925.05.08.). 이러한 정보는 경성 여학교에 여러 지역 출신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개별 사례이지만, 이를 39명 전체의 사회경제적 특성이나 민족운동 성향으로 확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기사에서 확인되는 학업, 예술적 재능, 출신 지역 및 가족관계는 학생선수의 실제 배경을 부분적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당시 『조선일보』가 인물을 구성하는 편집 요소로 기능하였다. 특히 운동능력과 학업 성취가 반복적으로 보도에 구성된 점은 학생선수가 운동만을 수행하는 전문선수보다 학업과 교내생활을 병행하는 여학생으로 우선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3. 운동능력, 신체, 외모, 여성성의 인물 소개
「새봄을 맛는 녀학교 운동선수의 자랑」은 제목에서부터 학생선수를 각 학교가 내세울 만한 자랑으로 규정하였다. 기사에는 학생의 실명과 연령, 학년, 종목, 경기경력 및 사진이 함께 제시되었다. 이러한 기사 형식은 학생선수를 학교 운동부의 익명 구성원이 아니라 개별적인 인물로 공개하였다. 특히 학생이 종목을 시작한 시기, 참가한 경기, 학업과 예술적 재능 및 향후 진로에 관한 내용을 함께 소개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회 결과 보도와 구분된다.
대부분의 인물 서술에서는 운동에 대한 흥미, 연습기간, 경기성적 및 복수 종목에서의 능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김희숙과 박례자의 육상 성적, 김두임과 이용렴의 우승경력, 윤문희의 배구와 정구 대회 참가 등은 여학생을 실제 경기 경험과 능력을 보유한 선수로 제시한다. 특히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경력이 2년”, “1학년부터 정구를 시작했다”는 식의 시간 정보는 운동능력을 일시적 재능이 아니라 훈련과 경험의 결과로 설명하는 기능을 하였다(조선일보사, 1925.04.23.; 1925.04.25.; 1925.05.05.; 1925.05.08.).
그러나 학생선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모두 경기력과 학업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표 7>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같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기사에서는 윤문희를 큰 키와 늘씬한 체형 및 천진한 미소를 가진 학생으로 묘사하였다. 반면 민위득에게는 키가 작고 다리가 길지 않다는 평가, 윤정희에게는 여성적인 외모의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평가가 서술되었다(조선일보사, 1925.05.08.). 이러한 표현은 운동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외모와 체형이 학생선수 평가의 요소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동일 기사 안에서도 여학생의 신체는 서로 다른 관점과 묘사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한편에서는 키와 체형이 운동 수행에 적합한 장점처럼 묘사되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적인 외모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평가 기준으로 적용되었다. 이에 따라 신체는 운동능력의 기반인 동시에 관찰과 평가의 대상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신문이 여학생의 적극적인 운동 참여를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신체를 당대의 여성성 기준으로 다시 재평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1925년 『조선일보』의 기획기사는 여학생을 경기와 훈련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운동 주체로 소개하면서도, 학업과 품행 및 외모의 기준을 함께 적용하였다. 따라서 기사에 나타난 학생선수의 인물상은 운동능력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학업 성취, 문화적 재능, 개인적 배경, 신체와 여성성 평가가 결합된 복합적인 언론의 관점과 보도 방식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Ⅳ. 논 의
1. 다종목 참여, 교외 경기 활동의 의미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여성체육은 여학교의 정규 체조교육에서 시작하여 과외활동과 운동부, 학교 간 경기 및 전국 규모 대회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였다(허현미 외, 2014; 예지숙, 2020). 이러한 변화는 여학생의 신체활동이 학교 내부의 교육과정에 머무르지 않고 경기장과 신문 지면을 통해 확대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1923년부터 개최된 전조선여자정구대회는 여성체육을 학교 밖의 공개 경기대회로 확대하고, 여성선수와 여학교 운동부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계기를 제공하였다(김미경, 이동준, 2025).
이 연구에서 탐색한 1925년 『조선일보』 기획기사는 대회 결과나 학교 운동부의 운영 현황만을 전달하지 않고, 학생선수의 이름, 연령, 학년, 사진, 훈련기간, 경기경력과 개인적 이야기 등을 연속적으로 소개하였다. 이는 여학생의 체육활동이 공개적인 경기대회의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별 선수의 인물 서사로 소개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신문 지면에서 학생선수는 학교 운동부의 익명 구성원이 아니라 특정한 종목과 경험 및 포부를 지닌 개인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보도 방식은 당시 여학생 선수에게 제한적이나마 공적 인물의 지위를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해정(2020)은 일제강점기 여학교 운동부가 여성의 체육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이후 전문선수를 배출하는 역사적 기반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 연구의 주요 분석 대상인 기획 기사 자료는 이러한 여학교 운동부의 역할을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차원에서 보여준다. 기사를 통해 학생은 소속 학교를 대표하고, 대회 성적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학교의 명예를 드러내는 인물로 소개되었다. 「새봄을 맛는 녀학교 운동선수의 자랑」이라는 기획 제목도 학생선수를 각 학교가 사회에 내세울 수 있는 성취의 주체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물 중심의 보도는 권석무, 유재혁(2026)이 분석한 1928년 『조선일보』의 「여학교운동부 탐방기」와 구분된다. 1928년 기획 기사가 10개 여학교의 지도종목, 지도교사 및 운동부 운영체계를 중심으로 학교 단위의 제도적 구조를 보여주었다면, 1925년 기획 기사는 학생선수 개인의 경험과 서사를 전면에 구성하였다. 이에 1925년 자료는 학교 운동부의 제도화 이전 또는 그와 병행하여 학생선수가 신문 지면에서 어떠한 인물상으로 그려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1925년과 1928년 기획의 차이를 곧바로 여성체육의 역사적 발전 단계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한 보도 방식 차이는 두 가지 기획 사이 3년 동안의 제도 변화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만, 신문사의 기획 의도와 취재 방식 및 편집 형식의 차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1925년의 인물 중심 보도에서 1928년의 조직 중심 보도로 발전하였다고 단정하기보다, 1920년대 『조선일보』가 여학생 체육을 인물과 조직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도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향후 두 기획 기사의 제목, 기사 분량, 질문 방식, 사진 구성 및 서술 어휘 등을 비교한다면 당시 여성 스포츠 보도의 형식적 변화까지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2. 학업과 운동 병행의 여학생 선수상 형성
1920년대 여학교 교육은 여성에게 근대적 지식과 사회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간주된 품행과 역할을 교육하는 공간이었다. 박정애(2000)는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초반에 걸쳐 교육받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초기 신여성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여성교육의 확대가 기존 성역할에서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박수빈(2024)은 근대 계몽기와 일제강점기의 여성교육 담론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여성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사회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여성교육의 이중성은 1925년 『조선일보』가 학생선수를 묘사한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기사에서 여학생의 운동능력은 독립적인 가치로 인정되었지만, 학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근거는 경기력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운동과 함께 우수한 학업 성취, 웅변과 토론, 음악과 성악 등의 문화적 역량이 반복적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학생이 학업과 교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학생선수의 활동성을 기존의 모범적 여학생의 모델과 조화시키는 서술 방식이었다.
특히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선수에 대한 보도에서 운동선수라는 이유로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점은 당시 학생선수에게 적용된 평가 기준을 보여준다(조선일보사, 1925.05.05.). 운동능력은 학교가 내세울 만한 성취로 인정되었지만, 그 인정은 학업 성실성과 학교생활의 모범성이 함께 증명될 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성향을 보였다. 따라서 기사에 나타난 모범적 학생선수는 운동에만 전념하는 전문선수보다 학업, 운동, 교양을 균형 있게 갖춘 여학생에 가까웠다.
황의룡(2008)은 광복 이전 여성잡지에서 체육과 건강이 여성의 신체적 발전을 위한 근대적 가치로 강조되면서도, 건강한 자녀의 양육과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 역할에 연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하였다. 장유리(2021) 역시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여성잡지에서 스포츠가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활동으로 소개되었으나, 그 자유가 최종적으로는 현모양처를 비롯한 전통적 젠더 규범에 수렴하는 이중적 구조를 보였다고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서 탐색한 기획 기사는 여성잡지가 아닌 일간신문이라는 매체적 차이를 지니지만, 활동적인 여성의 신체가 학업, 교양, 품행과 함께 제시되어야 긍정적인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들 연구의 맥락과 연결된다.
외모와 체형에 관한 서술도 이러한 조건부 인정의 절차적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신문은 여학생의 운동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키, 체형, 미소 및 여성적인 외모의 여부를 평가하였다. 이는 운동을 통해 공적 활동의 주체로 등장한 여학생이 여전히 여성 신체에 적용되는 미감 및 성별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운동하는 여성은 새로운 근대적 주체로 가시화되었지만, 동시에 학업에 충실하고 문화적 교양을 갖추며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성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인물로 제한되었다.
다만 이러한 기사 서술을 당시 여학교가 실제로 운영한 공식 교육정책과 동일하게 바라 볼 수는 없다. 신문이 강조한 학업과 교양 및 외모는 학교의 교육방침이 아니라 기자가 학생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선택한 보도 서술 방식이라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기사에 나타난 모번적 학생선수를 실제 학생의 온전한 삶이나 학교교육의 직접적인 결과로 간주하지 않고, 1925년 『조선일보』가 운동하는 여학생을 사회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한 하나의 담론적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3. 신문 사료 속 여성체육의 의미와 한계
일제강점기의 신문은 체육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1차 사료이지만, 당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객관적인 기록은 아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식민 통치의 정책과 이념을 전달하는 매체로 기능했으며, 기사 내용에도 총독부의 선전 논리가 반영되었다(황빛나, 이성례, 김지혜, 2013; 김강산, 2025). 이에 비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민간신문은 총독부 기관지와 다른 사회 인식과 비판적 논조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들 역시 검열과 경영환경 및 독자 확보를 위한 편집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성주현, 2009; 윤덕영, 2012).
따라서 『조선일보』가 독립운동 관련 가족관계를 보도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기획기사 전체를 항일적 여성체육 담론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오입분의 가족관계는 신문이 학생의 개인적 배경을 인물 소개에 포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기자의 항일 의도나 학생선수의 민족의식을 직접 입증하지는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조선인 지도교사의 존재를 자율적 민족교육으로, 일본인 지도교사의 존재를 식민 교육의 불평등으로 곧바로 연결하는 해석 또한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려면 교사의 교육관, 학교의 운영방침 및 조선총독부 교육정책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별도의 사료가 필요하다.
신문의 취재 대상 선정 또한 중요한 사료비판의 대상이다. 기사에 소개된 7개 학교와 39명의 학생선수는 당시 경성의 모든 여학교와 여학생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표본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일정한 운동부 활동과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학교와 학생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운동능력뿐만 아니라 학업 성취, 예술적 재능, 독특한 출신 지역과 가족관계가 있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우선 소개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탐색 대항 기획 기사에 학업 우수자나 대회 참가자가 다수 등장한다는 사실을 당시 경성 여학생 전체의 일반적 특성으로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학생의 실명과 사진 역시 실제 인물을 보여주는 동시에 언론이 구성한 이미지이다. 사진은 학생선수의 존재와 복장 및 단체 구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진만으로 이들의 성격, 계층, 여성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이 연구가 신체와 외모에 관한 분석을 기사 본문의 명시적 표현에 한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진은 학생선수를 독자에게 시각화한 편집 장치로 분석하되, 사진 속 인물의 외모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분석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여성 스포츠 보도를 분석한 조규상(2003)과 곽정현, 이선희(2014)는 미디어가 여성선수의 경기력보다 외모와 젠더화된 이미지를 강조할 경우 여성의 스포츠 주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권석무, 김보겸(2026)은 일제강점기 조선 신문의 서양 여자 복싱 기사에서 여성의 체육적 성취가 남성 시각의 호기심과 성상품화의 대상으로 보도된 양상을 분석하였다. 이와 비교하면 1925년 여학생 기획기사는 운동경력과 학업 및 개인적 포부를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었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일부 학생의 외모와 체형이 운동능력과 함께 평가되었다는 점에서는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경기력 중심으로 인식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을 여학생이 전적으로 성적 대상화되었다거나 반대로 민족언론이 여성해방을 선도하였다는 단일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7건의 기획기사에서는 운동경력과 포부를 가진 학생선수의 주체화, 학교가 자랑할 만한 공적 인물로의 가시화, 학업과 교양을 통한 모범적 학생선수상 구성, 외모와 여성성에 대한 젠더화된 평가가 동시에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 기사는 근대적 여성 스포츠 주체의 등장과 기존 여성 규범의 사회적 지속이 중첩된 양가적 사료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가 기존 여성체육사 연구에 더하고자 하는 바는 1925년 경성 소재 7개 여학교의 종목 분포를 처음 발견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당시 신문의 동일한 기획 형식 안에서 복수의 여학교 학생선수가 실명, 사진, 경기경력, 학업, 개인적 배경 및 외모 평가와 함께 어떠한 인물로 소개되었는지를 규명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접근은 학교와 종목 및 제도 중심의 여성체육사에서 개별 학생의 서사와 언론 보도 방식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Ⅴ. 결론 및 제언
1. 결론
이 연구는 1925년 『조선일보』 기획기사 7건에 소개된 경성 소재 7개 여학교의 학생선수 39명을 서사와 서술 내용을 분석하여 당대 여학생의 체육활동과 학교생활 및 언론의 인물 소개 방식을 탐색하였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연구 문제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25년 『조선일보』 기획기사에 소개된 학생선수 39명은 정구를 중심으로 농구, 육상, 배구, 탁구에 참여했으며, 적어도 11명이 두 종목 이상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1925년 여학교 운동부에서 개별 학생선수의 체육활동이 단일종목 전문화 이전의 다종목 경험과 교외 경기 참여 등의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둘째, 『조선일보』는 여학생 선수의 운동능력과 함께 학업 성취, 교내활동, 문화적 재능, 개인적 배경 및 체육교육 기회 등을 보도하였다. 이러한 서술은 당시 경성 지역 여학생 전반의 일반적 특성을 보여주는 자료보다 신문이 학생선수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복합적 인물상으로 소개한 방식으로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조선일보』는 여학생을 경기경력과 포부를 지닌 능동적인 운동 주체로 부각하면서도 일부 학생의 체형, 외모, 여성성을 함께 평가하였다. 따라서 해당 기획 기사에는 근대적 여성 스포츠 주체의 등장과 기존 젠더 규범에 따른 신체 및 외모 평가가 공존한 양가적 언론 보도 사례로 이해된다.
2. 제언
이 연구의 후속 연구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경성 소재 여학교 체육 활동을 취재한 다른 신문사의 보도 자료를 연구한다. 둘째, 경성 이외 지방 소재 여학교 체육 활동을 다룬 신문 기사 사료를 연구한다. 셋째, 같은 시기 경성 소재 남학교 체육 활동을 취재한 신문 보도 자료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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