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하는 초등학생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자문화기술지 연구
초록
본 연구는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취미로 축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엄마의 경험을 자문화기술지의 렌즈로 보여주는데 목적을 두었다. 기억회상자료를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하였고 시간 순으로 정리한 1차 자료는 기억을 구조화하며 주제어 중심으로 범주화하며 다시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딸아이는 축구하는 여학생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남학생의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둘째, 엄마인 ‘나’는 축구를 좋아하는 개인이었고, 스포츠 교육자로서 자신의 경험 속에서 여자도 축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스포츠 교육과 자녀 양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셋째, 스포츠 교육자인 엄마가 딸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일은 다양한 한계와 마주하고 있었다. 넷째, 딸아이가 축구를 배우는 과정에서 엄마인 ‘나’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은 편견의 시선으로 축구를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축구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접하며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다. 축구를 대하는 여러 겹의 ‘나’와 축구하는 딸아이를 대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서, 여학생이 축구를 배우는 것은 편견의 시선에선 저항이자 독특한 행동일 수 있지만, 엄마와 딸에게는 단지 축구를 좋아하여 참여하는 개인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present a mother’s experience of teaching football as a hobby to her elementary school daughter through the lens of auto-ethnography. The data were primarily collected through memory recall materials, which were structured chronologically and subsequently analysed by categorising key themes. The finding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daughter sought to overcome the prejudices of boys who perceived female football players as unusual. Second, as the mother, “I” was both an individual who enjoyed football and a sports educator who had a strong belief that girls should have the opportunity to enjoy football. This perspective shaped both my approach to sports education and parenting. Third, the process of teaching football to my daughter as a sports educator entailed various challenges and limitations. Fourth, throughout my daughter’s football learning journey, I realized that I, too, had unconsciously viewed football through a prejudiced lens, similar to other people. Lastly, despite these challenges, my daughter gradually grew as she encountered diverse experiences related to football. The study discusses how, within the layered perspectives of the “I” engaging with football and the “society” perceiving a girl playing football, learning football may be perceived as an act of resistance or an unconventional choice under prejudiced views. However, for the mother and daughter, it was simply a matter of personal enjoyment, reflecting the true meaning of participation.
Keywords:
Auto-ethnography, Elementary school daughter, Mother, Soccer키워드:
자문화기술지, 초등학교 딸, 엄마, 축구Ⅰ. 서 론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은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쾌거 이후 2023 FIFA 여자월드컵 조별 예선 탈락,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으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SBS에서 시작한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전히 가구 시청률 7.6%(수도권 기준)로 수요 예능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강선애, 2024. 10. 10), 2024년 11월 23일부터 2025년 1월 25일까지 방영된 7세 이하 유소녀들의 성장기를 다룬 tvN의 <달려라 불꽃소녀>는 시청자들에게 감동, 힐링의 감정을 전달하면서 시즌 2에 대한 강력한 요청을 받고 있다(김가영, 2025. 01. 26).
대한축구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말 97개 팀(2,312명)이었던 여자축구 동호인이 5년 후인 2022년 말 173개 팀(5,01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이주영, 2024. 03. 12). 여자 풋살팀도 2020년 12개에서 2023년 75개로 증가했는데, 이는 시도협회의 승인을 받은 대회에 등록한 인원만을 계산하기에, 대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비 승인 대회에 참여하는 인원들은 잡히지 않는 보수적인 집계라고 보아야 한다(김가영, 2024. 05. 27). 대한축구협회에서는 2021년 7월부터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초등학교 학생 대상으로 <신세계 그룹과 함께 하는 Let’s Play 축구교실: 이하 Let’s Play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홍은아, 진연경, 2022) 2022년부터는 인천시 교육청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였다.
축구는 신체적/감정적 강인함, 운동신경, 폭력성, 스피드, 지배, 민첩성, 이성애(heterosexuality) 등 어린 소년이 남자답게 되는 ‘성공적인(successful) 남성성’을 상징하는 종목이다(Campbell et al. 2018; Kostas, 2022; Swain 2003). 특히 초등학교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남학생과 여학생 간 신체 활동 수준 성 비대칭(gender asymmetries)이 나타나며, 축구는 남자아이들의 젠더와 성적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Bhana & Mayeza 2016; Kostas, 2022). 아일랜드와 영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활동성이 낮고, 여학생들의 약 10% 만이 최소 1일 신체활동 권고량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신체활동을 즐기는 여학생들도 남의 시선으로부터 판단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a fear of judgement)과 성 불평등에 대한 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Cowley et al., 2021).
여자축구는 수십 년 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보였다. 여자축구는 미식축구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참여스포츠로서 여자국가대표팀의 활약 덕분에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Statista, 2024a). 2010/2011부터 2021/2022 까지 미국 고등학교 축구 참여 인원 자료를 살펴보면 남학생과 여학생 비율이 거의 비슷함을 확인할 수 있다(Statista, 2024b). 2010년 이후 유럽에서도 여자축구 및 여성 스포츠 시장에 대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FIFA에서 발표한 ‘여자축구: 각국 협회 서베이 리포트 2023’을 살펴보면 축구를 하는 여성과 소녀들은 2019년에 비해 24% 증가하였으며, 2023년 여자 축구 클럽은 55,622개로 집계되는데 그 중 59%가 유럽에 집중되어 있다(FIFA, 2023). 2022년 기준으로 지난 5년간 잉글랜드에서 축구에 참여하는 소녀들이 10만 명 증가했고(Guardian, 2022. 12. 08.), 잉글랜드의 Euro 2022 우승 이후에는 약 1,500개 팀이 증가하였다(BBC, 2024, 02. 09.).
이러한 여자축구의 성장과 발전의 흐름 안에서 우리나라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축구를 시작하는 과정, 그리고 그 맥락에 대한 궁금증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선행연구(홍은아, 진연경, 2022)에서는 여학생들은 축구에 편견이 없는 반면 지도자들이 오히려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특히 남녀 신체적 기능 정도에 차이가 거의 없는 1,2학년 저학년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과 동등하게 축구 참여기회를 제공하는 활동의 중요성이 도출되었고, 여학생을 지지하는 사회적 환경 구축을 제안하면서 향후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에 착안하여 본 연구에서는 초등학생 딸을 가진 엄마로서의 ‘나’ 관점에서 딸의 축구 입문 과정을 자문화기술지를 적용한 학술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스포츠 참여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을 다룬 해외 연구는 다수 발견되는(Furusa et al., 2021; Knight et al., 2017; McCann et al., 2022; Mcllmoyle et al., 2024; Strandbu et al., 2020) 반면 국내에서는 유소년 운동선수 부모들의 ‘부모되기’ 경험을 심층면담 자료로 분석한 나유승, 오지현(2023)의 연구, 연구자가 포함된 연구참여 가정의 프로야구 팬덤 변화를 자녀의 성장기에 따라 분석한 정선희(2024)의 연구 정도를 찾을 수 있다. 젠더적 관점에서의 연구는 학교 운동장에서의 차별적 젠더 구성을 지적한 남상우(2018)의 연구, 젠더적 관점의 성평등, 불평등 체육 수업을 분석하고 전략을 탐색한 이규일(2011)의 연구와 정우정, 신진규, 김재운(2021)의 연구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의 시선에서 딸의 축구 입문, 성장을 자문화 기술지로 접근한 연구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젠더 불평등의 대표적 스포츠로 지목되는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나’의 경험이 스포츠 교육자로서의 ‘나’로 발현되고, 이후 딸아이의 엄마로서의 ‘나’로 어떻게 나타나는지의 과정을 자문화 기술지 연구방법으로 수행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Ⅱ. 연구 방법
1. 엄마이자 스포츠교육자로서의 연구자
나는 현재 9살 여자 아이의 엄마이자, 스포츠 교육자이다. 나를 스포츠 교육자라고 설명한 이유는 체육학과를 졸업한 후 체육교사로서 13년, 학교체육연구자로 4년, 체육 관련 학과에서 스포츠 교육학 관련 교과목을 5년째 가르치며 대학생들을 스포츠 교육자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교수자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9살인 딸아이는 한 학급에 남자 12명, 여자 12명의 인원이 균일하게 유지되는 교대 부설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교실은 1층에 위치하고 있어, 학생들이 운동장과, 2층에 위치한 강당에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지만, 운동하거나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성격 특성상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보다는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아이이다.
스포츠 교육자로서 ‘나’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육의 방향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은 다양성을 가진 모든 학생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간략하게 정의할 수 있다. 교사 임용 전 초등학교에서 당시 ‘학습부진아 지도’ 방과 후 강사로 2년간 일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 시기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면서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체육교사가 된 후 운동 능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관심을 가졌고, 서로 다른 수준과 흥미를 가진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하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초기에는 ‘남학생(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과 여학생(운동을 싫어하는)’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상대적으로 운동 수준이 낮은 여학생의 체육활동 참여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후에는 다양한 수준과 특성의 개개인으로 학생들을 대하였다.
이는 직업으로서 스포츠를 교육할 때뿐 아니라 엄마로서의 내 삶에서도 일관되게 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딸아이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끈기가 있으며,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할 때 발현되는 편이다. 학교 교육 안에서는 학업에 큰 관심도 없고, 운동 능력이 우수하지도 않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딸아이의 교육 전반에서 아이가 가진 독특한 특성과 성향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학습자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교육을 추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나의 스포츠 교육에 관한 관점과 딸아이의 교육 방식에 축구를 가르치는 일이 더해지며 다양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그 과정에서의 여러 혼란과 부딪히며 시작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현장연구자로서 나의 자격이나 신분에 대해 논의하는 것보다는 연구자로서의 나와 연구 현장에서 엄마로서의 내가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음을 이해하며 연구를 진행하였다(Reed-Danahay, 2017)
2. 자문화 기술지
본 연구는 자문화기술지를 연구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자문화기술지는 개인의 경험과 경험 속 사회문화적 맥락을 중시해 이해하려는 시도이다(한유리, 2022). 개념과 명제의 틀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며 모든 지식의 형성이 행위자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가치형성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반근본주의 존재론에 기반하여, 현상의 이면에 내포된 의미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려는 해석주의 인식론(Furlong & Marsh, 2010)에 기반하는 방법론이다.
본 연구는 축구라는 문화 속에서 엄마이자 스포츠교육학자인 나와 딸아이는 개개인의 생각과 의식 갖고 행동을 하는 주체이며, 그들이 속한 사회문화 내에서 축구와 관련한 여러 경험들에 어떠한 간주관적(inter-subjectivity) 의미를 부여하며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질문의 과정에서 자문화 기술지는 사회적 존재인 연구자 자신의 경험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며 이론적 통찰을 제시하는 연구라고 볼 수 있다(Adams & Manning, 2015).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내러티브 탐구이기도 하면서, 과거의 행동이나 경험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있어 해석학적 요소를 담고 있다(Hughes & Pennington, 2017). 다만, 경험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미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연구자의 기억, 연구결과에 포함된 내용과 포함되지 않은 내용 간의 차이, 경험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한계를 솔직하게 수용하고 그 의미를 단정 짓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본 연구는 나의 경험에서 공공의 이슈를 찾아내는 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동료 연구자와 도움을 주고받았다. ‘나’의 경험을 깊이 탐색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탐색하는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하였으며, 서론과 문헌고찰, 결과의 해석과 논의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연구에 함께 기여하였다.
3. 자료 수집
본 연구 수행을 위해서는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일상적이고 문제적인 순간과 그 의미를 연구해야 했다(Denzin & Lincoln, 1994). 본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은 주로 기억회상자료를 활용하였다. 기억회상자료는 오래전 나의 경험을 기억하거나, 아이의 축구 수업을 관찰한 결과의 기억, 아이와의 대화 기억, 자녀 및 주변인들과의 대화 기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더불어 카카오톡 및 문자 메시지, 유소년 축구팀 홈페이지 정보 및 수업 중 촬영한 사진 자료 등의 기록 자료로 이 자료들은 연구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 아니며 평소 일상 속에서 남겼던 것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기억을 회상하고 자료를 살펴보며 연구와 연결하면서 자문화기술지를 작성하였다.
질적 연구에서 연구자의 기억자료의 가치는 크다(Wall, 2008). 왜곡될 수 있는 기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도 있지만, 설문지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참여자들은 과거를 떠올리고 기억을 말하기 때문에, 변형되었을지라도 오랜 시간 지속된 기억은 연구자의 삶과 연구 과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며(Muncey, 2005), 잊혀지지 않고 말을 걸어오는 기억과 직면하는 것이 자문화기술지의 시작이 된다. 본 연구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기억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를 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4. 자료 분석
본 연구에서의 글쓰기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는 나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경험을 분석하고 기술하고자 노력하였다. 표면에 드러난 나의 행동이나 상호작용이 암묵적으로 어떠한 가치, 신념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지, 이를 통해 내가 속한 문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구체적인 나의 경험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러티브적 사고(narrative thinking)를 실행하며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상 속 나의 경험을 이야기 형태로 구성하였다.
일차적으로 나의 축구에 관한 기억들을 구체적으로 회상하여 기록한 자료를 다시 읽으며 시간을 시기별로 묶어 해당 범주 기억 자료의 의미를 도출해보았다. 의미를 바탕으로 기록된 자료와 추가로 수집된 자료를 종합하여 다시 읽으며 연구자의 관점에서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분석하였다. 분석한 내용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딸아이와 나에게 다가온 축구, 축구를 경험하는 사회 속 우리, 그 사회 속 나를 돌아보는 방식으로 경험을 재해석하며, 소주제별로 범주화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글을 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축구에 관한 나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돌아볼 수 있었다.
5. 연구 윤리와 연구의 진실성
본 연구는 연구자인 ‘나’의 경험을 다루고 있지만 자문화기술지의 연구목적이 자신이 속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고, 우리의 일상은 이미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Brinkmann, 2012) 타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배제하기 보다는 관계적 윤리(Ellis, 2007)를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가족의 이야기를 배제할 수 없었고 주변 인물들이 글 속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리적 책임을 고려하기 위해 해당 인물들이 언젠가 내 글을 읽어도 괜찮은지 판단하여 글을 작성하였으며, 제3자 및 공동 연구자에게 글을 보여주고 공정성을 물으며 최대한 절제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더불어 연구자인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연구가 출판되었을 때 ‘나’의 이야기가 부정적인 평가나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Ellis, 2007), 과도한 자기 공개인지 판단하며 글을 작성하였고(Wall, 2016), 지나친 세부 묘사를 피하고자 노력하였다. 더불어 나의 경험에 관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공동 연구자와 연구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연구의 진실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Ⅲ. 연구 결과
1. 축구를 좋아하는 딸아이
“엄마! 나 축구를 배워야겠어. 하준(가명)이가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고 했어! 내가 축구를 해서, 여자친구들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3월의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리아, 가명)는 갑자기 결의에 찬 얼굴표정과 몸짓, 그리고 강한 어조로 나에게 가까이 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체육 수업을 일주일에 2회 하게 되었는데, 담임교사가 체육수업을 하다 보니 자유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날 체육수업도 체육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 수업 중이었는데, 남학생들은 대부분 축구를 하고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앉아서 놀거나, 줄넘기를 했는데, 리아는 혼자 축구공을 드리블하거나 미니골대에 슛팅을 하는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리아는 평소에 남학생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도 자주 보내는 아이이고, 신체활동에도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인데 축구를 하는 모습에 1학년 때 같은 반이자, 같은 키즈 수영장에 다니고 있어 그나마 친분이 있는 남학생이 다가와 왜 축구를 하냐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리아가 자유 활동 시간에 움직임을 한 것도 모자라 축구를 했다는 것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는데, 남학생이 가진 편견을 수용하지 않고 축구를 배워서 여학생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에 내심 깜짝 놀랐다. 그동안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볼 수 없었던 스포츠에 관한 적극적인 태도였다.
리아는 평소에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하였다. 주로 ‘우리반에 A친구는 축구를 무척 잘해서 대회에 나간다. B친구는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온다. 남자아이들은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데 쉬는 시간 마다 축구를 하러 나가서 땀을 뻘뻘 흘리고 수업에도 늦게 들어온다. 축구를 하다 싸움을 해서 오늘 선생님에게 혼나고, 일주일동안 우리반에서 축구가 금지되어서 큰일 났다.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느냐 왜 7번이냐’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리아는 축구에 관심이 있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여학생이다. 리아의 양육 환경에서 축구는 여자인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 해왔고, 여자축구를 TV로 관람하며, 엄마, 아빠와 경기장에도 가보는 등 일상적이고 친숙한 스포츠였으며,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도 이미 축구하는 여학생을 이상하다 생각하는 남학생과 축구를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 당연한 여학생이 구분되고 있었다. 만일 리아가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면 ‘여자애가 왜 줄넘기를 하냐’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까? 유독 축구가 가진 고정관념이자 편견, 여학생의 신체활동 역량을 무시하는 복잡한 시선 안에서 딸아이는 자신의 주관을 지키며 행동하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싶었던 나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2. 축구를 대하는 서로 다른 ‘나’
리아가 2학년이 막 되었을 때 내가 서포터즈였던 축구팀이 현재 거주하는 지역으로 원정 경기를 왔다. 리아의 첫 축구장 나들이였다. 오랜만에 보물 상자에서 유니폼 세 개를 꺼내 입고 팀 머플러와 엠블럼이 새겨진 담요를 챙겼다. 나에겐 그 어떤 여행보다 설레는 순간이었다. 리아는 초록 유니폼을 입은 팀과 파란 유니폼을 입은 팀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파란팀 응원석에 앉아 그 팀의 응원가를 힘찬 북소리에 맞추어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리아가 축구에 관심을 갖고, 평소 모습과는 달리 축구공을 차고 노는 뜻밖의 모습은 엄마인 ‘나’의 태도와 그에 따른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인 ‘나’는 축구를 좋아했다. 축구를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월드컵 경기를 친구들과 함께 보기 위해 어느 날 새벽 학교 교무실 TV 앞에 몰래 모여 응원을 했던 기억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이탈리아의 결승 경기였는데, 로베르토 바조 선수가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한 장면이 아직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같이 축구를 함께 봤던 세 명의 친구들은 모두 여학생이었다. 고3때 체육 수행평가는 축구였다. 평가 항목은 슈팅이었다. 위쪽 양 모서리에 넣으면 A, 아래쪽 모서리 두 곳은 B 중앙은 C 등급을 받았다. 운동을 잘해서 체육학과 진학을 결정했던 나는 자신 있게 슈팅을 했는데 2번의 기회 모두 내 슈팅이 골대를 벗어났던 장면이 생생히 남아있다. 하마터면 축구를 싫어할 뻔했다. 이러한 여러 경험은 대학입학 후 프로 축구팀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어졌다. 대학 졸업 이후 2002년 월드컵을 지나고 교사가 된 10여 년간은 축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정확하게는 축구 관람, ‘보는 축구’에 심취했었다.
‘하는 축구’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때이다. 내가 재학했던 A 여자대학에서는 매년 학과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다. 당시 사회생활학과와 같은 다른 학과의 실력도 체육학과의 실력에 견줄 만큼 만만치 않았다. 이 축구 경기는 특이하게 2개의 공을 사용하는 방식을 가졌는데, 실제로 해보면 축구를 잘하지 못하는 수준의 사람들이 재미있게 경기에 참여하기 딱 알맞은 변형게임이었다.
나의 무지함 때문인지 몰라도 이 시기까지의 ‘나’는 축구가 젠더 불평등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 같다. 단지 축구 경기를 보고 있으면 즐거웠고, 월드컵 전이어서인지 남학생들도 축구보다는 농구를 즐겨 했기 때문에 남학생들만 축구를 하고 나는 여자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여대에 진학했고 그 안에서 즐겼던 축구는 나를 ‘축구 속 불평등의 세상’까지 이끌지 못했다. 남성 중심 스포츠인 축구를 내가 이겨내고 저항해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내가 즐기는 스포츠로서의 인식이 나에게 더 컸다.
이러한 인식이 있었기에 체육 교사가 된 후에는 나 자신의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여학생들에게도 축구가 가진 맛과 멋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임용된 2003년은 월드컵 직후로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지만, 여학생이 축구를 직접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여학생도 축구를 즐길 수 있고, 축구하는 것이 당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부터 나는 왜 운동장에서 남학생들만 축구를 하고, 여학생은 하지 않을까? 와 같은 생각을 시작했다. 더불어 이 무렵 일반학생 체육활동 활성화 정책 수립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 TF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던 나는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 부분의 연구를 수행하며, 여학생도 함께 즐기는 축구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더 넓은 사회 속에서 나는 세상 속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축구를 보았고, 그동안의 내 인식과는 달리 축구가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축구를 지도할 때 드리블 패스 슛과 같은 기초 기능뿐 아니라 남자 3팀, 여자 3팀으로 모둠을 구성하여 리그를 운영하였다. 13년 간의 교사 생활 중 축구를 지도할 때면 내가 항상 구성했던 수업방식이다. 여학생들도 축구 게임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체육대회 때 반 대항 경기에서도, 스포츠클럽 축구 리그에서도 나는 여학생이 경기에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매번 똑같지 않았지만 주로 전반전은 여학생 경기, 후반전은 남학생 경기로 진행하였다.
대학에서 스포츠 교육학을 가르치는 지금은 축구를 직접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지만 학습자 중심의 교육, 학습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교사로서 여학생들에게 내가 축구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가르치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부모의 입장에서 딸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고자 하는 일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축구에 관해 누구보다 자신 있게 여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축구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리아에게 축구를 가르치려고 하니 망설임이 앞섰다. 어디에서 가르칠까? 언제부터 학습이 가능할까? 여학생도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운동을 잘하는 여학생도 아닌, 움직임이 서투른 여학생인데… 괜찮을까? 코치선생님들이 딸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을까? 등 걱정, 근심이 앞섰다.
우선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곳을 검색해 보았다. 거리가 너무 멀어도 안 되고, 사설 학원은 교육자의 질과 프로그램이 걱정되었다. 그러던 중 지역 프로구단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호도가 높아 대기해야 하는 기간이 있는 곳이었지만 학부모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늘 참관할 수 있다는 점, 프로구단에서 운영하기에 교육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점 등 장점이 많았다. 대기를 하고 7개월 정도 지나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여자 아이인데 괜찮아요?, 여학생 반은 따로 운영하고 있지 않아요?, 운동을 잘 못하는 여자 아이인데 수업에 지장을 많이 주진 않을까요?, 학년제로 수업이 운영되는데 같은 반 학생들(당시 2학년)과는 수준이 맞지 않으니, 학년을 낮춰서 수업에 참여할 수는 없을까요?” 복잡한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여자 아이여도 괜찮습니다. 여학생만을 따로 모집하여 운영하진 않습니다. 운동을 못해도 괜찮습니다. 학년제 운영이 원칙입니다.” 담당자는 편안하게 다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듯 답해주었다.
스포츠 교육학을 전공하고 중등학교에서 근무하고 학교체육/스포츠 정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왜 여학생만 따로 모아서 운영하지 않을까? 사설 학원도 아닌데 그 정도는 적극적으로 해야 요즘의 흐름 아닌가? 리아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등록도 전에 의문이 가득했다. 담당자는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괜찮지 못했다. 어쩌면 불만이었다.
괴리도 느껴졌다. 내가 수업을 이끌어 갈 때는 환경을 조성하고, 내가 함께 뛰어주면 여학생들도 운동 능력에 상관없이 모두 재미있게 참여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아는 것, 내가 해왔던 것과 현실이 너무 달랐다. 그리고 현실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느껴졌다.
3. 축구하는 여자아이를 향한 다르지 않았던 나의 시선
2022년 11월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리아는 2022년 3월 무렵 축구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계속 기다려온 터였다. 수업은 동 학년 10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반에서 50분 동안 진행되었다. 25분은 기초기능 연습을, 5분 휴식 후 20분 정도는 미니축구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주거지역과 거리가 있는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매주 토요일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대부분의 학부모가 동행한 후, 운동장 스탠드에서 수업을 관찰하는 상황이었다. 삼각대와 캠코더를 설치하여 아들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아빠들도 있었고, 미니게임을 할 때면 많은 부모가 감독이 되었다. “00야! 패스해!, ◇◇야! 슛!!”
리아는 내성적인 아이이고, 친분이 없는 사람들(친구든 어른이든)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아이이며, 낯선 환경에 적응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신체활동을 배우는 학원을 처음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배움의 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오래 걸리긴 하지만, 기다려주면 환경에 적응하고 끈기 있게 배워나가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축구를 가르치는 나는 그동안의 걱정과는 결이 다른, 해결하기 어려운 걱정과 마주했다.
‘축구’라서 달랐다. ‘남자아이들은 2학년이어도 실력이 꽤 될 텐데, 리아가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같은 반 학부모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같은 반 남학생들이 리아에게 못한다고 거칠게 말하면 어쩌나’ 등 근본적으로 남자 아이들이 주로 하는 축구를 여자 아이인 리아가 하기 때문에 발생한 걱정이었다. 다른 학원을 다닐 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시간부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현실은 한 동안 그리고 축구를 시작한지 1년 2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간간히 지속되고 있다. ‘어? 여학생이 있네?’ 운동장에 서 있는 내가 주변 부모들의 놀라는 감탄사를 듣게 되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갑자기 눈치가 보였다. ‘여학생이 축구를 하러 왔으니 잘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우리 리아는 운동도 잘 못하는데 어쩌지?’, 팀을 편성할 때, 기초 기능 연습 중 모둠별로 경쟁상황이 있을 때면 리아와 같은 팀이 된 남학생들의 원성이 종종 들려왔다. 안 그래도 적응이 어려운 리아가 ‘괜찮을까?’ 속이 상했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운동을 잘 하지 못하는 여자 아이가 ‘축구’를 배우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남자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그럼,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일까?
나는 그동안 여자라고 축구를 왜 못하나? 와 같은 나름 깨어있는 의식을 가졌다 생각해왔다. 그런데 딸아이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자 오히려 축구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나에게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문화적 속성 속에 딸아이를 들어가게 하는 것이 옳은지도 여러 번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가 보였고, 피해를 줄까 걱정도 되었다. 리아가 축구를 잘했으면 하는 나의 욕심으로, 그동안 해왔던 나의 양육 방식이 아이에게 결국 부담으로 되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미안함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여자 아이가 왜 축구를 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고정관념을 가진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이라 포괄하여 경시하는 마음으로 이어져버렸다. 되돌아보니 아이러니하게도(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조금은) 이 모든 나의 생각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축구를 대하는 나의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도 여학생이 축구를 하는 건 특별한 것이라는 시선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잘못되었다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줄 알았지만 결국은 같은 시선으로 축구를 배우는 여자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4. 축구하며 성장하는 딸아이
나의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리아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사실 리아는 처음 하는 운동이라 어려운 것이지, 그 밖의 부분은 여타 다른 학원을 다닐 때와 비슷했다. 다만 게임 상황에서는 예상했던 것처럼. 그 시간 내내 공과 가장 먼 거리에 서 있는 특징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게임 중 공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경기장 내에서 공과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는 방식이다. 사실 이 모든 시간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아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오롯이 리아와 선생님의 시간이었다.
첫 수업 후 리아에게 물었다. “리아야, 계속할 수 있겠어?” “응, 나 할 수 있어. 재미는 있어”. 다행히 선생님은 수업을 운영하는데 융통성을 발휘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팀을 편성할 때는 리아를 고려해서 상대적으로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리아와 팀을 하도록 구성해 두 팀간 경기력에 차이가 없도록 해주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생님이 지고 있는 팀 혹은 리아 팀 선수로 경기에 참여해주었다. 아주 가끔 골킥을 할 때 골대 앞을 서성이는 리아에게 패스하며 공을 멀리 차보라 지도할 때도 있다. 물론 긴장한 탓에 올바르게 공을 찬 적은 없다. 수업 중에는 리아를 특별히 대해주기 보다는 잘 습득하지 못하는 동작이 있으면 자세히 설명해주는 정도로 지도가 이루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 아이들의 원성도 줄었다. 리아가 골킥을 하게 되면 가까이 다가와 수비를 하기 보다는 거리를 만들어 주며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어느 날은 ‘리아야∼’ 하며 공을 리아에게 패스한 남자 아이도 있었다. 물론 리아가 받아주지 못했는데, 그 아이는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아쉬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6개월 정도가 지나 여름이 되었다. 남자 아이들의 공차는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어, 미니게임 중에는 스피드, 힘, 속도가 빨라졌다. 미니 게임을 하는 시간에 경기장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서 있기만 했던 리아는 한여름 뙤약볕에 무서운 공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미니 게임 시간에는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덜컹’ 축구를 안 하다고 할까 봐 걱정이 마음속 깊이 내려앉았다. 선생님과 상의하여 해당 시간에는 엄마인 나와 패스나 드리블 연습을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5번의 수업 동안 리아는 미니게임시간에 개인 연습을 하였다. 연습을 하다가 한 10분 정도는 친구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구령대 위에서 보며 경기에 대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사정과 행사로 수업을 약 한달 간의 결석 후 다시 수업에 참석한 리아가 미니게임 시간에 엄마랑 연습해도 되는지 여쭈었는데, 선생님은 미니 게임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리아가 괜찮은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지켜보았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팀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날 이후 리아는 경기 중에도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물론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무리 속에서 드리블 패스를 하진 않았지만, 공이나 남자아이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자기 팀이 공격할 때는 중앙선 가까이 올라가 움직였고, 공을 쳐다보고 위치를 잡았다. 물론 공의 움직임에서 여전히 떨어져 있긴 했지만, 이전보다 거리는 가까워졌고 공과 아이들의 움직임을 더 유심히 살폈다. 리아의 움직임과 작지만 큰 변화에 몇 차례 사진을 촬영하여 다시 보곤 했다. 촬영된 사진을 보아도 과거의 사진과 최근의 사진 속 리아의 위치와 공과의 거리는 많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1월의 어느 날 리아는 “오늘 나 학교에서 축구했어”라고 자랑했다. 놀라운 일이라 자세히 물으니,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남자 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했다고 한다. 놀라운 변화였다. 리아가 운동장에 나간 것도 놀라운데 남학생에게 같이 축구를 하자고 제안하고 함께 하는 행동 그동안의 리아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3학년 겨울 방학식 날 리아는 타임캡슐이라는 종이 한 장을 받아왔다. 3학년이 된 첫날 자신의 꿈을 작성하여, 선생님이 1년간 보관하다가 종업식에서 나눠주신 거라고 한다. 약 1년 전 리아의 미래의 꿈은 ‘축구 선수’였나 보다. 그 순간 축구 선수가 되진 않더라도 평생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했다.
Ⅳ. 논 의
1. 축구를 대하는 여러 겹의 ‘나’
연구 결과 ‘나’에게서 축구를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나’는 축구를 즐겼다. 대학시절에는 적어도 1주일에 1∼2회 경기장을 찾았고, 원정경기에도 자주 따라다녔다. 남학생 못지않게 축구를 즐겼다. 당시의 나는 ‘여성’이기에 축구를 즐기는 것이 독특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보는 축구를 즐겼던 것에서 기인할 수 있다.
체육교사로서 나는 축구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졌다. 내가 즐기는 축구를 여학생도 즐기길 바랐다. 축구를 한 번쯤 직접 경험해 보면 향후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여학생들도 축구를 할 줄 알고, 여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스포츠를 교육하고 축구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여학생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다른 신체활동을 지도할 때와 다르지도 않았다. 잘 설계된 체육 수업의 경계 안에서 축구는 여학생이 즐기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딸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고자 하는 ‘나’는 축구에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와는 너무 다른 태도로 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축구를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렵지? 여자아이이기 때문일까? 남자아이였어도 그랬을까? 와 같은 질문이 생겨났고, 처음으로 ‘평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는 부모들이 여성으로서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축구 종목에 관심이 있는 여자아이들을 초기 스포츠로의 사회화 단계에서부터 차단하고 있다고 밝힌 연구 결과(황성하, 2023)의 맥락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주도적으로 축구 관람을 하며 즐기고, 내가 체육 수업을 구성하여 실천할 때와는 달리 일반적인 ‘사회’ 안에서 보통의 여자 아이가 축구를 한다는 것은 달랐다. 축구하는 여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딸아이에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가르치는 ‘나’는 ‘운동을 잘 못하는 딸 아이’, ‘다른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잘 지도할 수 있을까 라는 불신’과 같은 내가 만든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내가 행해왔던 것들과 전혀 다른 모습의 나를 본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깨어있는데, ‘다른 이들과 사회’가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진 것이라 생각되었으나, 되돌아보니 다른 이들과 똑같은 편견 안에서 불만과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인 ‘나’에게도 뿌리 박혀 있는 축구는 남성의 스포츠라는 스포츠 교육학자로서 실천했던 모습과는 모순된 내 생각을 인지하게 되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여자축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과 여자축구에 씌워진 프레임(황성하, 2023)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스포츠 교육자로서, 축구를 즐겼던 사람으로 이러한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남성 위주의 축구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거나, 여자 아이에게는 특별한 대우가 있어야 하니 이를 요구한다거나 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기존의 문화에 적응하고 순응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축구를 계속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대응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겹의 나를 벗겨낸 뒤 ‘나’ 의 깊은 내면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축구를 즐기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또 내 딸아이에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축구가 ‘좋아서’ 이다.
SNS 커뮤니티인 ‘여자축구의 모든 것’ 운영자의 인터뷰에서 ‘여자가 왜 축구를 하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저희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축구를 하는 것은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가 재미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페이스북코리아, 2020.10.19.). 홍은아, 진연경(2023)의 연구에서도 여자 대학생이 축구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 삶의 활력소이자 행복임을 밝히고 있다.
이선옥(2020)은 ‘단단한 개인’의 개념을 제안하며 개인 하나하나가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보다 단단하게 구축되어진 자아를 가지고 세상을 대할 것을 요구한다. 그동안의 양성문제에 대한 가치를 깨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아직은 많은 이들이 딸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나를 독특하게 볼 것이고, 성평등의 관점에서 축구를 보는 학자들은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저항을 하기 위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단지 이러한 축구에 대한 나의 좋은 태도와 감정을 딸아이가 함께하길 바라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축구를 대하는 일반적인 인식과 행동이 아닌 다른 의견을 말하고 있는 단단한 개인이 되고자 하고 있다.
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여전히 내가 오래전부터 여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온 여학생들에게 축구를 알리는 선도적 역할을 했던 스포츠 교육자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복잡한 나의 이면들이 상징하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축구를 대하는 면면이 아닐까.
2.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대하는 ‘사회’
연구결과 리아 역시도 축구가 좋아서 하고자 하는데, 남학생들의 편견과 부딪히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2∼3학년 시기에는 클럽에서 남학생들과 함께 하였지만, 3학년이 지나면서 남학생들과의 실력차가 더 커지고 있어 함께 축구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더구나 학교 교육에서는 자유 시간을 제외하고는 축구와 같은 종목 혹은 신체활동을 경험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축구하는 여자 아이가 자연스러운 ‘사회’를 위해 다음 두 가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 교육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여학생들은 체육활동을 굉장히 즐겁게 여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고, 꾸준히 지속할 의사가 높은데 이러한 체육수업에 대한 높은 기대와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타인에 의해서 방해를 받을 때는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문화실, 2017). 연구결과 리아에게도 여자가 왜 축구를 하냐는 남학생의 질문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가왔다. 물론 리아는 그 편견을 극복하고자 축구를 시작했지만, 축구하는 리아에게 편견을 갖고 있던 남학생이 왜 그런 관점을 갖게 되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학생이 가진 편견이 리아와 같은 여학생에게도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정과 학교에서의 성평등 학습으로 인해 학생들 인식 자체가 남녀가 동등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인식하여 체육활동에 적극적인 여학생들이 많다는 연구 결과(전영한, 2023)에도 불구하고, 어떤 환경이 2학년 남학생에게 편견을 주었는지, 부모와 주변인, 미디어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특히, 학교체육 맥락에서 성평등 관련 연구는 현저히 부족하고, 특히 선행연구들의 상당수가 중학생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전영한, 2023), 여교사에 비해 남교사가 ‘남자(혹은 여자)다운 신체활동’과 같은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 고착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윤기준 외, 2021)를 기초로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도 관련 연구가 수행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 시기가 양성평등에 대한 개념을 인지하고 형성하는데 더 중요한 시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초등 체육수업에서의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체육수업 운영 시 남녀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학생’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요구된다(김윤희, 2007). 남녀학생의 생물학적 차이에 입각하여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며 성평등을 추구하기 보다는 젠더(gender)의 관점(이규일, 2011)에서 차이가 만들어 내는 차별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김동식, 장용규, 2015). 이러한 관점에서의 체육수업은 다양성과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2022 개정 체육과 교육과정(교육부, 2022)에 도입된 바와 같이 움직임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유정애, 김윤희, 2002), 선행경험이 없는 종목 선택, 학습자 개개인의 능력을 고려하고 존중하는 학생 중심 수업,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평가하는 개인차를 고려한 평가 방법(정우정, 신진규, 김재운, 2021)을 제안한다.
더불어, 신체활동 참여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교육부, 2022)에 따르면 체육 시간은 3∼6학년 204시간으로 배당되어 있으며, 1,2학년 통합교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리아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체육수업이 주 2회 배정되어 실시되고, 나머지 1시간은 체험학습 등의 시간으로 대체되는 것이 현실이다. 1∼2학년 때는 주1회 체육복을 입고 갔는데 그 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는 초등학교 1∼2학년 즐거운 생활 과목에서 체육 교과를 분리 신설하기로 결정하였다(박고은, 2024. 04. 26.). 이 새로운 교과가 신체활동을 보장하는 시간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길 바라본다.
셋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2010년 이후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해 실시된 다양한 학교체육 정책으로 여학생이 운동하는 문화는 어느 정도 조성되었다 할 수 있다. 그동안 행해온 노력은 여학생 특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여학생들에게도 체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확장의 차원이었다(진연경, 이현석, 2016).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축구와 같은 전통적인 스포츠를 여학생이 참여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향후 정책에서는 여학생들이 신체활동을 폭넓게 즐길 수 있도록 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운동 수준, 선호 종목, 체력 수준 등에 따라 즐겁게 신체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
남녀가 평등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포츠 기본법에서 강조하는 스포츠권이라 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본 연구에서는 축구라는 종목으로 드러내 보였다. 축구를 하는 여학생의 이야기가 ‘소수’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여학생들이 축구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에 사회적 편견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이 지원되길 희망한다.
Ⅴ. 결 론
축구가 가진 남성적 특성과 상징(Campbell et al. 2018; Kostas, 2022; Swain 2003), 그 헤게모니에 기인한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 속에서 나는 굳이 왜 딸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을까? 라는 물음이 본 연구의 시작점이 되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연구자로서 나는 ‘엄마인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았고, 그 첫 걸음에서 스포츠 교육자로서 그동안 배우고 실천해 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아이인데 남학생들의 수업에 함께해야 하는 것은 배려가 없는 것 아닌가? 남자아이라면 어렵지 않았을 텐데와 같은 조금은 다른 평등을 고민하는 ‘나’, 다른 이들과 같은 편견을 가진 ‘나’를 볼 수 있었다. 스포츠 교육자로서 나의 인식과 엄마로서 나의 인식에는 간극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남성 헤게모니를 가진 축구라는 스포츠를 여자 아이에게 가르치는 행위를 그동안의 연구 및 이론에서는 ‘저항’의 개념에서 설명한다(Knijnik, 2015; Packard, 2009). 축구가 가진 남성 중심의 문화나 시스템을 이겨내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만 할 수 있는 것인데 여자인 네가 왜 하느냐는 한 남학생의 질문에, 축구가 남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리아의 마음은 저항이었다. 또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나’ 역시도 편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되며 나 그리고 리아가 저항하기 위해 축구를 지속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 중요한 발견이었다. 나는 리아가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축구가 가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 했고, 리아도 축구가 재미있고, 축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유롭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회의 스포츠 문화,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스포츠 권이다.
이제 리아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된다.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편견의 관점에서 인식할 수도 있는 변화의 경계에 서 있는 시기다. 여학생이 축구를 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편견과 싸워가는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회적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지점에서 본 연구에서 나와 리아의 경험이 세상과 연결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촘촘한 정책 제공으로 스포츠 교육의 평등이 실현되어, 많은 이들의 인식이 천천히라도 변화하는 첫걸음이 되길, 그 걸음이 든든한 사회적 지지가 되길 기대해본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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